공동선 추구하는 정치, 가장 높은 애덕의 구현

(가톨릭평화신문)
▲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군의 포격으로 무너진 모스크를 지나가고 있다. 【CNS 자료 사진】





5장 좋은 정치

형제애를 바탕으로 하는 보편적 공동체는 공동선에 봉사하고자 하는 좋은 정치 지도력이 선행되어야 탄생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세계에는 이러한 통 큰 정치 지도력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세계는 지금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과 자유주의를 내세우는 이들이 정치판을 주름잡고 있다. 포퓰리즘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대중을 선동하고, 자유주의는 주로 힘 있는 이들의 경제적 이익을 지켜주는 역할을 도맡아 한다. 둘 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 특히 가장 나약한 이들의 방패는 되어주지 않는다. 사회가 단순히 복수의 개인을 모아놓은 집단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차이를 넘어서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공동의 노력을 경주하는 공동체로 이해한다면, 그 사회를 구성하는 민중(People)이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이런 민중은 대중영합주의의 대중과는 구별해야 한다. 그렇다고 민중이 하는 일이 무조건 옳거나 좋다고만 간주하는 것도 잘못된 편견이다. 민중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동일한 사회적 문화적 유대에서 유출되는 같은 정체성을 공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를 이익을 공유하는 이들의 집단’ 정도로만 이해하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입장은 공동체와 문화적 유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민중’의 개념을 거부하고 쉽게 포퓰리즘의 딱지를 붙여버린다. 그러나 개인주의적 접근만으로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 힘없는 이들까지 포용할 수 없다. 진정한 애덕은 모두를 끌어안기 위해 사회의 여러 제도나 조직이 보유하는 다양한 장치와 자원을 모두 동원하여 모두를 살리는 일이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혼자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사고 난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여관이 있었고, 여관 주인의 도움이 없었다면 상처받고 죽어가는 이를 살려낼 수 없었다. 개별적 접근과 방법만 가지고는 아주 소수에게만 혜택을 주고 나머지 대다수는 그냥 버려두게 된다. 많은 나라에서 고통받고 죽음에 직면한 가난한 이들을 도우려면 보편적인 형제애가 우선되어야 하나, 국제적 조직의 효율적인 지원을 통하지 않으면 참된 애덕의 실천은 어렵다. 진정한 애덕 실천을 위해 먼저 우리 마음이 바뀌고, 태도와 생활습성도 바뀌어야 한다.

21세기 들어서서 국경을 넘나드는 국제 경제와 재정의 힘이 정치를 압도함으로써 국가의 힘이 약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정치가 경제에 종속되거나, 경제가 기술 관료들의 효율 제일주의에 장악되어서도 안 된다. 이를 감안하여 세계는 좀 더 강력하고 효율적인 국제기구의 체계를 구축하고, 이러한 국제조직의 관리자는 각 정부의 합의 하에 세계의 공동선을 위하여 강력한 제재를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아야 한다.

현재의 유엔과 경제기구, 국제재정기구의 개혁을 단행하여 국제기구들이 소수 국가의 뜻대로 좌지우지되지 않고, 이념적 차이 때문에 약소국이라고 해서 기본적인 자유가 억제되거나 문화적 지배를 강요당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치는 가장 차원 높은 애덕의 구현이며 지고한 소명이다. 정치적 애덕은 모든 개인주의적 정신 자세를 초월하는 사회적 의식에서 탄생한다. 사회적 애덕을 실천하는 사람은 공동선을 추구한다. 사회적 애덕은 모든 사람의 선익을 추구하지만, 사람들 개개인의 사사로운 선익보다는 그들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사회적 차원의 선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한다. 고통당하는 이를 돕는 일이 애덕의 행위이지만, 우리가 그 사람을 직접 모른다고 해도 그의 고통을 초래한 사회적 여건을 변화시키기 위해 일하는 것도 애덕의 행위이다.

한 노인이 강을 건너도록 돕는다면 이는 훌륭한 애덕의 행위이다. 정치인은 그 강에 다리를 놓음으로써 또한 훌륭한 애덕을 실행한다. 누가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제공한다면 그는 그에게 큰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그러나 정치인은 그 사람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줌으로써 다른 형태의 지고한 애덕을 실현하는 사람이다. 좋은 정치의 핵심은 애덕이며 이는 가장 도움이 필요한 이를 우선적으로 사랑하는 행동이다. 애덕을 통하여 변화된 시선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 특히 가난한 사람의 존엄을 인지하고 그의 정체성과 문화를 존중하며 사회 안에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다. 이 시선이야말로 참된 정치를 아는 이의 심장이다.



강우일 주교 제주교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