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교회, 난민 외면한 정부와 반세기 협력 끊는다

(가톨릭평화신문)
미국 워싱턴 D.C 가톨릭대에 있는 이주민을 표현한 ‘무명의 천사들’ 조각상.  OSV
 
미국 주교회의 의장 티모시 브로글리오 대주교. OSV


미국 트럼프 행정부 이후 난민 정착 프로그램이 축소되면서, 미국 주교회의가 연방정부와 맺어온 반세기 협력 관계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주교회의 의장 티모시 브로글리오(군종교구장) 대주교는 8일 성명을 통해 “가슴이 아프지만 미국 연방정부와의 난민 재정착 지원 협정 갱신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 협정에는 아동 보호소 운영과 난민을 위한 연방정부의 재정 지원이 포함돼 있다. 브로글리오 대주교는 협정 미갱신 사유로 “정부가 난민 재정착을 위한 프로그램 협력을 중단한 데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협정은 올 회계연도 막바지인 9월까지 적용되고 10월부터 중단된다. 이에 따라 연방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 주교회의 산하 이주난민부는 아동 보호소 운영과 난민 보호 활동 등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브로글리오 대주교는 “1980년부터 연방정부와 협력하면서 난민 93만여 명이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이어 “협정 미갱신과 프로그램의 대폭 축소로 우리 형제자매들이 폭력과 박해로부터 안전한 피난처를 찾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주교회의 대변인은 이미 주교회의 산하 이주난민부 직원 93명이 해고됐다고 밝혔다. 브로글리오 대주교는 “많은 직원과 이주민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면서 “이들을 위한 기도를 부탁하며, 신자들의 많은 후원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번 사안은 미국 주교회의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연방법원에 고소한 데 따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주교회의는 지난 2월 정부가 이주난민 정착지원금을 집행정지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 의회에서 책정된 예산도 지급하지 않았다는 게 주교회의의 주장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단순히 계약 논쟁에 불과하다며 연방청구법원에 소를 제기하라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주교회의는 정부가 2400만 달러(약 350억 원)를 지급하라며 항소한 상태다.

더불어 가톨릭으로 개종한 JD 밴스 부통령은 지난 1월 “주교회의가 1억 달러(약 1450억 원)에 달하는 정부 재원으로 불법이민자들을 지원한다”며 비난한 바 있다. 그는 당시 가톨릭 교리인 ‘사랑의 질서(Ordo amoris)’를 잘못 해석해 자국민 우선주의를 주장하며, 가톨릭계 안팎에서 비판을 받았다.

미국 주교회의는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 가족을 돕고자 발족한 전국 가톨릭전쟁위원회가 전신이다. 초기부터 전쟁과 폭력을 피해 온 이들의 쉼터 역할을 했다. 1920년 주교회의는 이민국을 설립해 지난 100여 년간 미국 외 지역에서 유입된 이주민을 돕는 데 앞장서 왔다.



이준태 기자 ouioui@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