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은 주님 부활 대축일이면 달걀을 나누고, 앞마당에서 형형색색으로 꾸민 달걀을 찾는 놀이를 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현재 조류 인플루엔자(AI) 영향으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달걀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부활절에 삶은 달걀 껍데기를 깰 수 있을지 근심이 이어지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7일 기준 미국 달걀값은 1년 전보다 53%나 급등했다. 3월 5일 현재 소매가는 12구 한 판 기준 8.64달러(약 1만 3000원)까지 치솟았다. 지금은 달걀 가격이 다소 내렸지만, 여전히 물가가 비싼 미국 뉴욕 등지에서는 소매가로 12구 한 판에 10달러(약 1만 4500원)를 지출해야 한다.
이는 AI 때문으로, 올 초부터 3월 둘째 주까지 미국에서만 암탉 3000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2022년부터 추산하면 살처분된 가금류는 1억 6600만 마리에 달한다. 전국 양계 12.3%에 해당하는 수치다. 미국이 달걀 공급 부족을 해소하려면 한두 달 안에 7000만~1억 개를 수입해야 한다.
미국 방송매체 NBC는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자 백악관이 연례행사인 부활절 달걀 굴리기 행사를 열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고 전했다. 이 행사에만 달걀 3만 개가 쓰인다. 혹은 플라스틱 모형으로 된 달걀 굴리기 행사가 열릴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 행사를 예정대로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 행사를 두고 양계 농가에서는 의견이 갈린다. 에밀리 메츠 미국달걀협회 의장은 “유통되는 달걀 일부만을 사용하기에 산업 전반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면서 “어린이와 가족의 기쁨을 빼앗을 수 없다”고 말했다. 미시간주 양계업자 바네사 프리아스씨는 NBC에 “사람의 뱃속으로 들어가야 할 달걀이 백악관에서 소모되는 건 막아야 한다. 그저 낭비에 불과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우려가 나오자 달걀 대신 감자와 마시멜로, 돌멩이에 염료를 입혀 달걀 굴리기 행사를 열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크래프트 하인즈사는 파스텔톤의 마시멜로를 내놓으며 “부모들은 큰돈을 들이지 않고 부활절 전통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유럽도 AI로 달걀 수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프랑스 매체 르몽드에 따르면 프랑스 달걀 생산량이 전년 대비 4% 줄었다. 육계 생산량도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독일 매체 DW는 유럽도 최근 몇 년간 달걀 수급 문제가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달걀 수출 요청으로 유럽 내 비축분이 충분할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포르투갈과 폴란드·프랑스에서 고병원성 AI 발병까지 겹쳤다는 설명이다. DW는 “대부분 유럽국들은 미국에 수출할 여력이 충분치 않다”고 전했다.
아울러 부활절 달걀의 대체품으로 쓰이는 달걀 모형 초콜릿도 인플레이션 영향을 피해갈 수 없다. 가격이 오르거나 슈링크플레이션(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제품량이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호주 소비자 단체 초이스에 따르면 초콜릿 제품을 생산 및 판매하는 대표 업체인 캐드버리·네슬레·알디 등은 전년 대비 제품량을 줄이거나 가격을 올렸다. 이 매체는 소비자가 같은 양의 초콜릿을 사는 데 지난해보다 평균 33% 더 지불하고 있다고 전했다. 캐드버리의 ‘데어리 밀크’는 지난해 400g 판매가가 20호주달러(약 1만 8000원)였지만, 올해는 같은 가격에 340g으로 양이 줄었다.
네슬레 ‘킷캣 미니 에그’는 3.99호주달러(약 3600원)에 110g이었지만, 올해 90g으로 판매 중이다. 전문가들은 원물 카카오 가격의 기록적 폭등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카카오 주요 생산지 서아프리카에서 나무의 노화, 악천후, 토양 문제에 따른 작황 악화로 초콜릿 가격이 인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