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거부하는 의료인·기관 법적으로 존중해야

(가톨릭평화신문)


“여성이 상황이 어려워 낙태를 결정하는 것이 자기 결정권을 실현하는 것입니까? 임신을 유지하고 낙태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결정은 자기 결정권이 아닙니까? 태아를 낙태로부터 보호하고, 임신한 여성이 국가의 보호와 지원을 받는 것은 입법 과정에서 기본 전제가 돼야 합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5월 22일 국회도서관에서 마련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입법과제’ 토론회에서 정재우(가톨릭대 생명대학원장) 신부는 “임신한 여성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보호 및 지원이 마련되기 전에 법 제도만 바꾼다면 여성이 다른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낙태를 선택하게 될 것”이라며 “임신한 여성과 잉태된 태아 모두를 보호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신부는 “낙태를 거부하는 의료인과 의료기관을 존중하는 보호 규정을 명시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정 신부는 “태아를 죽이는 행위는 누구에게도 의무가 될 수 없고, 특히 생명 보호를 양심상 의무로 여기는 개인과 기관에 낙태 행위를 강요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낙태하지 않는 의료인ㆍ의료기관에 낙태 시술 기관을 안내, 알선하게 해서도 안 되며, 낙태하지 않기로 한 의료인과 의료기관은 법적으로 존중받아야 함을 강조했다.

김주경(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은 신념에 의한 의료인의 낙태 시술 거부 쟁점에 대해, “28개 유럽연합 회원국 중 21개 국가가 신념에 의한 낙태 거부를 법률로 허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조사관은 그러면서도 “종교재단이 운영하는 의료기관이 낙태 시술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 (결국) 임부가 낙태 시술 제한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김 조사관은 낙태죄 결정 관련 쟁점을 △임부의 요청에 따른(사유 불문) 임신중절 시기 결정 △생명 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할 수 있는 시기 결정 △청소년 임부 등의 보호자 동의 요건 △시술 전 상담, 숙려기간 등 절차적 요건 △의료서비스 접근성 제고를 위한 정책 △신념에 의한 의료인의 진료 거부 등 6가지로 정리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이사는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의 공식 입장은 낙태 반대”라고 분명히 했다. 김 이사는 “나라별로 초음파 기계가 다르고, 초음파 기계로 임신 주수를 결정할 수 없다”며 “낙태 허용의 기준을 임신 주수로 두는 것의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낙태하러 온 여성에게 어떤 형태로든 낙태 동기를 없애주는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 11일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에 대해 재판관 7대 2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법 개정 시한을 2020년 12월 31일로 정하고, 국회가 임부의 자기결정권 행사에 충분한 기간의 설정, 사회ㆍ경제적 낙태 허용사유의 조합 방식, 상담 요건 및 숙려기간 등 절차적 요건 등을 검토할 것을 요청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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