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들의 사회교리] (23)사유재산과 사회적 책임

(가톨릭평화신문)
▲ 최원오 교수



“내가 내 재산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왜 누군가를 부당하게 취급하는 것입니까?”라고 그대는 반문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대의 것인지 제게 말해 보십시오. 그대가 이 세상에 갖고 온 것이 무엇입니까? 그대는 어디에서 그것을 받았습니까? 극장에서 먼저 자리 잡고 앉아 있는 사람이 나중에 들어오는 사람을 지나가지 못하게 함으로써, 누구나 즐기라고 있는 공간을 마치 자신만의 것처럼 여기듯이, 부자들도 이렇게 행동합니다. 그들은 공동재산을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움켜쥐고서, 그것을 선취했다는 이유로 공동재산을 자기 소유물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사는 데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나머지를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준다면 부자도 없을 것이고 가난한 사람도 없을 것이며 부족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대는 빈손으로 태어나지 않았습니까? 빈손으로 다시 흙으로 돌아가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대는 그대의 재산을 어디에서 얻었습니까? ….

다른 사람은 가난한데 그대는 왜 부유합니까? 가난한 이들은 끈질긴 인내심으로 고통을 이겨 낸 후에야 비로소 하느님으로부터 보상을 받는 반면, 그대는 자선과 충실한 청지기직에 대한 보상을 받게 하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대는 그대의 욕심이라는 밑 빠진 호주머니 속에 모든 것을 집어넣으면서도, 아무한테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듯이 행동합니다. 하지만 사실 그대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서 빼앗았습니까?”(대 바실리우스, 「내 곳간들을 헐어내리라」 7 . 노성기 옮김)



내 재산을 내 맘대로 쓸 수 없는 까닭

대 바실리우스(330년~379년경)의 이 강해는 현대 교황들이 거듭 강조하는 재물의 사회성, 재화의 공공성의 토대가 되는 가르침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번 돈을 내 맘대로 쓰고 소유한다고 해서, 그게 무슨 잘못이며 왜 비난받을 일인가?”라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바실리우스의 이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한평생 열심히 돈을 모은 우리 시대 평범한 부자들의 항변일 수도 있고, 좋은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던 부자의 불평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그들은 자기 집 대문 앞에서 뒹구는 종기투성이 거지 라자로에게 어떠한 불법행위나 해코지도 하지 않고 오로지 제 몫의 부와 재화에만 충실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부자들이 하느님의 심판을 비껴가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는 자기 식탁에 차려진 산해진미가 부스러기로 연명해야 하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 누리도록 마련된 하느님의 선물이며 공동 재화라는 진실을 허투루 여겼기 때문이다.



독점과 공유 사이에서

분배정의가 허물어진 참혹한 현실을 바실리우스는 극장에 빗댔다. 극장 입구에 버티고 앉아 함께 누려야 할 공동의 공간을 독점해 버리는 이 우스꽝스러운 비유가 바로 우리 경제의 서글픈 현실이다.

극소수의 부자들이 독식하고 독점함으로써 수많은 사람을 가난과 궁핍으로 내모는 이 야만의 시대에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며 탐욕적 축재가 죄악이라는 복음의 진리를 담대하게 선포하고, 모든 재화는 공동의 것이며 재화에는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우직하게 실천하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소명이다.



최원오(빈첸시오, 대구가톨릭대 유스티노자유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