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들의 사회교리] (40)가난한 노동자의 존엄

(가톨릭평화신문)
▲ 최원오 교수



“도덕규범의 울타리 안에만 안주하지 않았던 거룩한 토빗은 품팔이 노동자에게도 품삯을 갚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토빗은 가지고 온 돈의 절반까지 품삯으로 나누어 주었고, 그 결과 훌륭한 품꾼 대신 천사 라파엘을 발견했습니다. 그대가 혹시라도 의로운 사람을 품삯으로 착취하고 있는지 어찌 압니까? 그가 힘없는 사람이라면 더 고약하거니와,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이는 불행합니다! 그 보잘것없는 사람 안에 천사가 있을지 누가 압니까? 품팔이 노동자 안에 천사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장 작은 이 안에도 즐겨 머무시는 그리스도께서 계실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품팔이 노동자에게 그의 품삯을 되돌려주고, 노동자에게서 자기 노동의 대가를 착취하지 마십시오. 그대도 그리스도의 품팔이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대를 당신 포도밭으로 데려가셨고, 그대에게는 천상 품삯이 예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 안에서 일하는 종과 자기 목숨을 내어주는 품팔이 노동자를 아프게 하지 마십시오.

자기 노동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 품삯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한 사람을 경멸하지 마십시오. 가난한 사람의 삶에 필수적인 도움을 거절한다면, 이는 인간을 살해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그대도 품팔이꾼입니다. 그대가 기도할 때 ‘주님, 당신을 떠받드는 이들에게 품삯을 주소서’(집회 36,15)라고 주님께 말씀드릴 수 있도록, 그대도 품팔이 노동자에게 품삯을 주십시오.”(암브로시우스, 「토빗 이야기」 91-92)



고리대금업은 살인 행위

가톨릭교회는 고리대금업 같은 돈놀이를 간접 살인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비판한다.(「간추린 사회 교리」 341항) 그 뿌리는 동방의 대 바실리우스와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서방의 암브로시우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암브로시우스는 돈놀이를 가장 강력하게 단죄한 교부다. 약탈적 대출에 삶을 저당 잡힌 채 빚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 편에 서서 돈놀이를 도둑질과 살인 행위로 단죄했다. 그는 키케로의 문장을 빌려 이렇게 단언한다. “고리대금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토빗 이야기」 14,46) 비참한 사람의 불행을 수익의 기회로 삼는 악랄한 노략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착한 이자를 받으며 선한 대출자로 살아가는 길도 있다. 가난한 사람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알아뵙고 그분께 꾸어 드림으로써 하느님을 영원한 채무자로 만드는 일이다.



노동자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급해야 할 의무

가난한 노동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그 노동에 기대어 살아가는 온 가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살인이다. 모쪼록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일용직 노동자를 착취하지 말고, 노동자의 소금꽃 핀 얼굴에서 천사와 주님의 모습을 놓치지 말라고 암브로시우스는 권고한다.

그는 인간의 양심과 도덕, 실천하는 신앙과 사랑의 투신이 지닌 진정한 혁명성을 끝까지 믿고 희망했다. 「토빗 이야기」는 빚의 덫에 걸려 절망하는 가난한 사람들, 진실하게 땀 흘리고도 사람대접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품어 안아야 할 교회의 사명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소중한 교부 문헌이다.





최원오(빈첸시오, 대구가톨릭대 유스티노자유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