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간 의식없는 아들, 팔순 노모의 가슴앓이

(가톨릭평화신문)


“저는 그저 하느님만 의지하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하느님께 요한이와 저를 같은 날 데려가 달라고 기도합니다. 요한이는 평생 좋은 곳에도 못 가보고, 좋은 것도 못 먹어봤는데…. 저렇게 누워있는 불쌍한 요한이를 두고 먼저 하늘나라에 못 갑니다.”

제주시 삼도2동 중앙주교좌성당 마당에서 만난 김복련(도미니카, 84) 할머니의 깊게 팬 눈가 주름 사이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요한이는 할머니의 둘째 아들(김시형, 55)이다. 1983년, 고교 3학년이었던 아들은 결혼식에 다녀오던 중 뺑소니 오토바이에 치여 거리에 나뒹굴었다. 머리를 심하게 다쳐 뇌출혈이 왔고, 의식을 잃었다.

“아들이 은행에 취직했다는 합격 소식을 듣고 7일 만에 난 사고였어요. 아들이 이제 돈 열심히 벌어서 호강시켜준다고 했는데….”

어머니가 바라는 건 물론 호강은 아니었다. 당시 45살이었던 할머니는 2~3살 터울의 5남매를 홀로 키우고 있었다. 2년 전, 토목 일을 하던 남편이 뇌출혈로 세상을 먼저 떠났고, 상고를 졸업한 큰딸이 은행에 취업해 벌어오는 돈으로 겨우 생계를 잇고 있었다. 아이들 학비는 물론, 차비도 없어 걸어 다녔다. 허구한 날, ‘오늘 저녁은 쌀이 없는데…’ 배고픈 자식새끼들을 떠올리며 가슴이 미어졌던 날들이 수두룩했다. 화장품을 팔러 다니고, 성당 청소를 하며 돈을 벌었던 할머니는 본당 수녀가 ‘사순절 헌미함’에서 퍼주는 쌀로 배고픈 아이들의 끼니를 해결했다.

고등학생이었던 아들이 병상에 누운 지 37년이 흘렀다. 아들이 병상에서 늙어갈 때마다 김씨는 더 빨리 늙어갔다. 물리치료를 받아 상태가 호전되기도 했지만, 3년 전 아들은 다시 뇌출혈이 왔고, 상황은 더 악화됐다. 요양병원에 입원해 의식 없이 누운 채 입만 뻐끔뻐끔한다.

40년 전 김씨는 집집이 화장품이라도 들고 다니며 돈을 벌었지만 이제 팔순이 넘은 노모가 됐다. 가진 거라고는 협심증과 척추 협착증밖에 없다. 걷기조차 힘들지만, 돈이 들까 봐 병원 근처에도 안 간다. 자식들도 다 커서 자기 살림을 차렸지만, 생활이 변변치 않다. 이혼한 큰딸은 혼자서 세 자녀를 키우고 있고, 공부방을 운영하는 딸은 코로나19로 벌이가 줄었다.

팔순의 노모가 감당해야 하는 아들의 간병비는 매달 90만 원. 물티슈와 기저귀를 비롯한 생필품값도 한 달에 10만 원씩 든다. 본당 빈첸시오회에서 매달 20만 원을 지원해주고 있다. 김씨 앞으로 나오는 노령연금에서 10만 원을 아들 간병비로 보탠다. 나머지는 자녀들이 십시일반 도와주고 있지만, 언제까지 도와줄 수 있을지 막막하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후견인 : 제주교구 중앙주교좌본당 주임 현경훈 신부

아들의 갑작스러운 사고로 김복련 자매님은 평생을 가슴앓이하며 사셨습니다. 척추 협착증으로 제대로 걸을 수 없는 데다가 아들 간병까지 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도움을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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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련 할머니 가정에 도움 주실 독자는 6일부터 12일까지 송금해 주셔야 합니다. 이전에 소개된 이웃에게 도움 주실 분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담당자(02-2270-2421)에게 문의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