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발달장애인, 성모님 도움으로 성당 반장하다

(가톨릭평화신문)



늦은 저녁, 반원들의 집을 방문해 이번 달 길잡이를 전달한다. 다음 주 반 모임에 쓸 길잡이이다. 집집에 돌리고 나니 차가운 밤 공기에도 몸에 땀이 밴다. 멋진 운동이 되었다.

나는 마흔여섯 살, 지적 및 발달장애 2급 장애인이지만 우리 11구역 5반의 반장이다. 반원들 모두가 나를 배려해 주시는 친절한 분들이다. 그분들이 먼저 내게 반장직을 맡아 달라고 권하셨다. 몇 년 전 엄마가 반장으로 봉사할 때 이를 돕던 내 모습을 좋게 봐주신 덕이다.

성모님과 함께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전 반장님이 나서서 신부님과 면담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유 마리아 자매가 발달장애인이기는 하지만 반원 모두가 일치된 마음으로 반장을 도우면 소공동체를 활성화하는 데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반원들 모두가 같은 뜻입니다.”

이야기를 들으신 신부님께서는 “참 아름다운 반원들입니다. 그렇다면 기쁜 마음으로 반장 임명장을 주어야겠네요” 하고 말씀하셨다.

이 소식은 금세 반 모임 SNS를 통해 알려졌다. 반원들의 댓글이 이어진다. “유 마리아가 반장을 잘해낼 수 있도록 우리가 열심히 도웁시다!”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요. 힘닿는 한 도와줄 테니… 고마워, 반장 맡아 주어서.”

성물방에서 봉사하는 엄마와 나에게 신부님께서 다가오신다. 신부님은 “11구역 5반을 일치와 화합의 장으로, 나눔과 친교의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 가리라 믿는다”며 악수를 청하셨다.

장애인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바로 설 수 있도록 사랑과 배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반원들과 신부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 이 모든 것은 성모님의 도움이리라 믿는다. 성모님의 전구를 들어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이 글은 엄마 김수옥(모니카, 사진 오른쪽)씨가 딸 유은상(마리아)의 마음을 헤아려 발달장애인의 입장에서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