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화해·일치] 평화의 원년을 기원하며 / 이원영

(가톨릭신문)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6월 30일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특히 미국 대통령이 역사상 처음으로 적성국인 북한 땅을 밟았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빅뉴스가 됐다.

19년 전인 2000년,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 말에 북한의 조명록 차수는 미국을 방문해 북미 공동 코뮤니케 발표와 함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클린턴 대통령 초청 의사를 전달했다. 이에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이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준비를 위해 북한을 방문했다. 그러나 그 직후 미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방북은 무산됐다. 클린턴 대통령은 퇴임 이후 2009년에 방북해 당시 북한에 억류돼 있던 두 여기자의 귀환을 성사시켰다. 카터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인 1993년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면담하고 북한의 남북 정상회담 제안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1994년 갑작스러운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남북 정상회담은 불발됐지만, 카터 대통령의 방북은 제1차 북핵 위기 해결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퇴임한 미국 대통령들의 방북은 한반도의 긴장을 해소하는 데에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었던 것을 방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직 미국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그것도 김정은 위원장의 손을 맞잡고 넘었다는 것은, 어쩌면 한국전쟁의 종전과 항구적 평화체제로의 진입에 대한 선언적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조만간 열릴 예정인 북미 실무협상에서 실질적 성과를 도출해 작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 사항들이 하나씩 진전되기를 간절히 빌어 본다.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까지 제재 해제가 없다고 강조해 왔다. 그렇다면 하노이에서 있었던 핵동결과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한 북한 제안에 대해 미국은 체제 안전 보장에 관련된 협상안을 중심으로 준비하고, 제재 해제 문제에 대해서는 개성 공단과 금강산 관광에 대한 제재 면제 조치 등을 통해 미국이 아니라 우리가 주도하는 경제 협력 방안을 결합한다면 북한도 미국도 수용 가능한 방안이 되지 않을까?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도 6월 30일 “만남의 문화에 좋은 모범이며, 기도와 함께 이 만남의 당사자들에게 인사를 전한다. 이 중요한 행동은 한반도뿐 아니라 전 세계가 평화의 길을 걷는 데 도움이 되기를 빈다”고 말했다. 한국천주교회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 역시 “종전협정과 평화협정을 체결해 새로운 일치와 평화의 시대를 마련하는 은총의 원년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만 된다면 “전하여라, 겨레들에게 그분의 영광을 모든 민족들에게 그분의 기적들을”(시편 96,3)이라는 말씀대로 하느님의 기적을 우리가 앞장서서 증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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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