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편지] 사랑을 남기고 추억을 남기고 / 안용석

(가톨릭신문)
어머니께서 이사를 가셨다. 본당에서 가장 오래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하시던 어머니께서 세상일을 다 끝내시고 저 높은 하늘 동네로 이사를 가셨다.

“어머니! 기도 열심히 하시네요.” 생전 병상 위에 놓여 있던 반질반질 윤이 나는 향나무 묵주를 보며 아내가 말을 건넸을 때 어머니께서는 “요즘은 기도도 잘 안 된다”고 하셨다. 반석같이 견고한 신심을 지닌 어머니셨다. 어머니께 그렇게 나약한 표현은 평생 처음 듣는 터라, 그때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프다. 누워 계신 병상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고 지루하고 힘드셨으면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손끝에 박힌 가시 하나에도 아픔을 참지 못하며,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흔들리는 나의 믿음을 생각하면 이를 데 없이 부끄럽고 죄송하다. 가랑잎처럼 누워 있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른거려 올 때마다 가엽고 측은하고 애처로운 이 마음은 감출 길이 없다.

“아범도 멀고 힘들 텐데 이젠 오지 마라”고 하시던 어머니! 그토록 고통스러운 어머니셨지만 불효자인 자식에게는 끝까지 사랑이셨다.

연초록 한복저고리의 영정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찍어 내는 산수(?壽·80)의 형님과 동생 여섯 명의 모습도 애잔하다.

장례 이후에도 한동안 잡다한 세상이 멎고 어릴 적 추억들이 물 밀리듯 내게로 몰려왔다. 포탄이 날아다니는 한국전쟁 중에도 공소 역할을 하는 우리 집과 동네를 지켜야 한다며 피란 가기를 마다하며 묵주알만 굴리시던 흰 한복 차림의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비롯해 흐린 등잔 밑에서 눈을 비벼가며 자식 여덟 명의 양말을 깁느라 마실갈 틈도 없으셨던 어머니, 밤새 내려 쌓인 눈길을 두어 시간 걸어 미사와 주일학교까지 마치고 돌아와야만 밥을 먹게 하시거나 때로는 성당에 가기 싫어하는 형과 나를 앞세우고 성당까지 달리기 시합을 하자시던 아버지, 그렇게 내가 1등으로 달려가면 형은 2등, 그 뒤를 천천히 3등으로 따라오던 아버지….

시나브로 교리문답을 외우면서 복습해 시험을 보던 초등학교 시절 교리 시간이 또다시 떠오른다. 문제는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났느뇨?’, 답은 ‘사람이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세상에 났느니라’였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면, 태어나는 순간 누구나 예외 없이 ‘삶’이라는 학교에 등록한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보내져 학교(삶)를 다 마치고 나면, 나비가 옷을 벗고 날아오르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은 육신으로부터 해방하는 것이 허락된다.

나는 믿는다. 믿어야 한다. 아름다웠던 날들의 고마움이 그립다 못해 마음이 저려온다 해도, 이제는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육신으로부터 해방될 자유의 날을 기다리며 준비해야 할 차례다. 내 차례다.

수런수런, 아침저녁 싱그러운 바람이 추억 속의 나를 일상으로 깨운다. 푸른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뜨겁고 투명하다. 끊임없이 피고 지는 제라늄 꽃 앞에 큰 절을 올린다. 나와 아들과 손자들에게 신앙과 함께 ‘어버이의 사랑’과 ‘아름다운 추억’을 유산으로 물려준 부모님께 고맙기 한량없는 큰절을 그렇게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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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석(안드레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