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아버지의 선물(김해선, 비비안나, 시인)

(가톨릭평화신문)


제 부모님은 천주교와 무관한 분들이셨습니다. 평생 유교 전통을 지키며 대가족 중심의 삶을 사셨습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1년을 꼬박 초하루와 보름날에 새 밥을 지어 제사상에 올리셨습니다. 하루하루가 농사일로 고된 생활이었지만 부모님은 최대한의 정성을 할머니께 드렸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저는 집에서 혼자만 성당에 다녔기 때문에 우리 가족을 위해 기도할 때는 조금 우울하기도 했습니다. 부모님과 동생들이 성당에 다닐 마음이 영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결혼한 후에 부모님께서는 서울 근교 부천으로 이사하시고 그해 설 명절, 부천의 한 성당에서 설 미사에 참석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날 미사 때 제대 앞에 차려진 차례상과 두루마기 한복을 입으신 신부님의 모습, 그리고 조상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강론 말씀에 아버지께서는 크게 감동하셨다고 합니다. 천주교가 한국의 전통을 받아들이면서 전교했다는 것을 아버지도 막연하게는 알고 계셨지만, 두루마기 한복을 입으신 신부님께서 죽은 이를 위한 미사를 드리는 모습을 보시고는 ‘이런 종교라면 믿고 싶다’는 마음이 드셨고, 이후 부모님은 교리를 배우기 시작하셨습니다.

두 분이 세례를 받으시고 자연스럽게 성당 노인대학에 다니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만, 우리 집은 종갓집이기에 제사는 계속 예전과 같이 모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도 신부님께서 하신 것처럼 제사상을 정성껏 차리시고 천주교 방식으로 제사를 모셨습니다. 식구들이 많다 보니 종교도 다양했습니다. 작은집과 막내 작은아버지, 셋째 고모님은 교회를 다니시고 광주에 계신 고모님들은 불교를 믿고 계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제사를 모시기에 앞서, 해마다 형제들이 모두 무탈하게 모여서 제사를 지내게 되어 감사하다는 인사말과 함께, 우리 형제들 모두가 종교가 다르지만, 형제들의 종교를 존중한다시며 각자의 방식으로 정성껏 제사에 참여해달라고 당부하시곤 했습니다.

2년 전 아버지께서 병환으로 돌아가셨을 때는 집안에서 처음으로 천주교 방식으로 장례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과 형제들이 언제쯤이나 성당에 다닐까 싶어, 우울하고 막연하기만 했던 중학교 1학년의 기도가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을 하느님의 자녀로 불러주시고, 아버지께서 하느님의 자녀로 살다가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우리 집의 제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남동생 역시 아버지의 방식을 이어받아 제사 때마다 타 종교에 대해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면서 존중과 배려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이 중요하면 상대방 생각도 중요하다는 단순함이라고 느끼게 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형제들의 각기 다른 종교에 대해 배려할 줄 아셨던 아버지의 모습은, 아버지께서 우리 가족에게 남겨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