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다름의 축복(정석, 예로니모,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가톨릭평화신문)


저희 부부는 사이가 좋은 편입니다. 도서관 사서로 일했던 헬레나는 저에게 꼭 필요한 책이나 영화를 종종 추천해 줍니다. 코로나로 저녁 모임이 없어져 일찍 퇴근할 수 있었던 지난 3월부터 한동안 헬레나가 추천해 준 드라마를 보면서 저녁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의 아저씨’와 ‘동백꽃 필 무렵’은 도시와 마을공동체를 연구하는 저에게 꼭 맞는 드라마였습니다. 가족처럼 지내는 이웃들이 서로 돕고 상처를 치유해 주는 따뜻한 공동체에 찐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보는 내내 마음이 짠했던 ‘눈이 부시게’는 장인어른 돌아가신 뒤 저희 집에 모신 장모님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 드라마였습니다.

사서 출신답게 그때그때 적절한 조언을 해주는 아내가 있어 든든합니다. 29년 꽤 긴 시간을 부부로 살았는데도 여전히 연애 시절의 설렘이 남아있습니다. 술이 과해 코를 심하게 고는 날을 빼면 늘 함께 잡니다. 새벽에 잠을 깨면 곁에서 곤히 자는 헬레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사랑스러워 볼을 살짝 쓸어주고 어깨와 등도 다독여줍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잠결에도 포근히 안아주며 내 등을 두드려줄 땐 단단히 묶인 매듭을 보듯 우리가 서로에게 소속된 부부라는 걸 느낍니다.

우리 부부 사이가 늘 이렇게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신혼 초에는 많이 싸웠습니다. 더없이 사랑스럽던 연인과 혼인해서 함께 살아보니 어쩌면 이렇게 나와 다른지 황당했습니다. 생김치를 좋아하는 제게 풀냄새 나는 생김치 말고 신김치를 먹으라고 합니다. 물건들이 제자리에 있어야 맘이 편하고, 할 일을 끝낸 뒤에야 놀든 쉬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와 달리 헬레나는 설거지 그릇을 수북이 쌓아놓은 채 드라마를 보곤 했지요. 화를 내고 또 부탁도 해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싸워서 해결될 일이 아니니 접고 포기하기로 마음먹어도 순간순간 화가 치밀면 또 싸워야 했습니다.

서로 다른 것 때문에 싸워야 했던 악순환을 깨끗이 끝내준 게 ME 주말이었습니다. 중2 큰아들부터 여섯 살 막내딸까지 네 아이를 성당 이웃들께 맡기고 다녀온 2박 3일 동안 둘이 참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누가 옳고 그른 게 아니라 그저 다를 뿐이고, 상대방을 결코 바꿀 수 없다는 걸 알았지요. 나와 다른 걸 인정하고 존중해야 함을 깨닫고 나니, 내게 없는 배우자의 장점이 보였습니다. 단점을 꼬집어 탓하는 대신 장점을 칭찬하고 격려해 주니 사랑 듬뿍 받고 자라는 꽃나무처럼 함께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가장 가까운 이에게 존중받으니 자존감도 당연히 커졌고요. 부부관계가 좋아지니 자녀와의 관계도 덩달아 좋아졌습니다. “엄마랑 아빠랑 사이좋은 게 참 고마워요.” 언젠가 막내딸에게 들은 이 말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다름’ 때문에 싸웁니다. 다름은 ‘틀림’이 아닌 그저 다름일 뿐입니다. 나와 아주 많이 다른 배우자를 만난 덕에 까칠하고 경직되고 지나치게 예민했던 제가 이만큼이나마 부드러워졌습니다. 그저 인정했을 뿐인데, 다름의 축복을 넘치도록 받았습니다. 다름은 축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