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코로나와 함께(정석, 예로니모,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가톨릭평화신문)


“휴~ 다 끝났네요. 하느님 감사합니다. 모두 모두 정말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지난 9월 13일 주일 저녁 9시 반, 한국 최초로 아니 세계 최초로 열린 ‘비대면 ME 디퍼 주말’이 무사히 마무리되었습니다. 월드와이드 매리지엔카운터 한국협의회 총무인 저희 부부는 지원팀으로 참여해 토, 일 이틀간 발표팀(한국ME 대표 사제와 대표 부부)과 전국 10개 교구 소속 참가 부부 21쌍, 사제 열한 분과 내내 함께했습니다. 요즘 널리 사용되는 줌(zoom) 화상회의를 주관하고, 발표팀과 호흡을 맞추며 이틀을 초긴장 상태로 보내서였는지 마무리되는 순간 감사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가톨릭교회의 부부일치운동 ME (Marriage Encounter)은 1950년대 말 스페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청소년 사목을 담당하던 가브리엘 칼보 신부님은 청소년 문제가 대부분 가정에서 비롯됨을 깨닫고 가정을 건강하게, 특히 부부관계를 온전하게 하는 프로그램으로 ME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1962년 바르셀로나에서 첫 프로그램이 열렸고, 한국에서는 1976년에 ME 주말이 시작되어 지난해 말까지 9만 9728쌍 부부와 사제 1881명, 수도자 2005명이 ME 주말을 체험했습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19는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깊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성당 미사가 중단되기도 했고, 구역반 모임과 신심 단체 모임도 멈춘 상태입니다. ME 운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원을 제한하고 방역 조치를 강화해 ME 주말을 개최한 교구들도 있지만, 3월 이후 대부분의 주말 프로그램들이 취소되었지요. 발표팀으로 봉사하게 될 사제와 부부들을 위한 디퍼 주말(Deeper Weekend)도 몇 차례 취소되다가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함에 비대면 주말을 기획했고, 오랜 기간 준비해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발표팀과 참가자들이 화상회의 방식으로 원활히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을지, 참가자들의 화상회의 접속에 어려움은 없을지, 한 곳에서 숙박하는 대신 각자 집에서 집중하면서 참여할 수 있을지 등 걱정이 많았지만, 꼼꼼하게 준비하고 사전 점검을 여러 번 거친 덕에 모험과도 같던 첫 비대면 디퍼 주말을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직접 참가했던 사제와 부부들의 생생한 의견을 더해 한국ME 상임위원회에서는 ‘비대면 ME 주말 매뉴얼’을 만들어 전국 15개 교구에 공유할 예정입니다.

코로나는 어쩌면 이 시대 우리 인류에게 파견된 예언자일지 모릅니다. 이제 더는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지 말고, 동식물에서 바이러스까지 인류와 함께 살 귀한 생명들을 괴롭히지 말라는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회개하고 참회하되, ‘코로나 이후(Post Corona)’를 그저 기다리기만 할 게 아니라, 꽤 길어질지 모를 ‘코로나와 함께(With Corona)’ 사는 시대에 적응해야 합니다. 길은 있습니다. ‘비대면’과 ‘대면’을 적절히 병행하고 결합하는 ‘오투오(O2O: Online to Offline)’를 우리 삶과 신앙생활에도 적용하는 것입니다. 비대면 디퍼 주말에서 저는 그 희망을 봤습니다. 작은 희망이 단단한 일상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