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돋보기] 기념일과 대축일

(가톨릭평화신문)


한국 교회에는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가 있다. 교회는 성인과 복자 기념일을 전례력으로 정해 그들의 신앙을 기억한다. 9월 20일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이다. 5월 29일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이다. 9월 20일은 ‘대축일’이고, 5월 29일은 ‘기념일’이다. 대축일과 기념일은 전례력 등급에서 차이가 있다. 그런데 103위 성인이 시성된 1984년 전까지 한국 교회는 9월 26일을 ‘한국 순교 복자 대축일’로 지냈다. 세월이 흐르면서 복자를 기념하는 날이 ‘대축일’에서 ‘기념일’로 등급이 낮아진 것이다. 한국 신자들의 순교 신심이 약해진 게 고유 전례력에 반영된 건 아닐까. 실제로 103위 성인의 이름조차 모르는 신자들이 많다.

전례력은 보편 전례력과 고유 전례력으로 나뉜다. 보편 전례력은 전체 교회가 사용하고, 고유 전례력은 지역 교회의 고유한 특성을 반영한다. 교황청은 1997년 「고유 전례력과 고유 전례문의 몇 가지 측면에 대한 공지」를 발표했다. 교황청은 “복자와 성인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지나치게 많은 기념일이 도입되는 것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니까 전례력 등급 변경은 교황청 지침에 따른 것이지, 성인과 복자를 향한 신심이 약해졌다는 주장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성인과 복자를 향한 마음가짐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4년 103위 성인에 대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이 순교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이라고 말했다. 평신도 스스로 신앙을 받아들인 한국 교회가 이토록 성장했다는 것, 성인을 닮으려는 한국 신자들의 모습이 기적처럼 보였다는 뜻이다. 103위 성인에 대한 기적 심사가 관면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124위 복자 시성식 때도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지금 이대로라면 제2의 기적은 요원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