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우리의 시간, 주님의 시간(손일훈 마르첼리노, 작곡가)

(가톨릭평화신문)


모든 생명이 활기를 되찾는 봄이 다. 초록잎들 사이로 꽃이 피고 해도 길어졌다. 나는 매일 아침 지저귀는 새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커튼을 젖히고 창문 밖을 내다본다.

작은 새들은 무리 지어 다니면서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는지 재잘대고 나뭇잎 사이를 가볍게 뛰어다니면서 열매를 쪼아먹고, 큰 새들은 제법 큰 소리로 울면서 커다란 나무들을 왔다 갔다 날아다닌다. 그리고 그 커다란 나무의 기둥을 타고 내려와 옆집 지붕 위에 오늘은 무엇이 떨어져 있는지 찾아다니는 갈색 청솔모가 두 마리 있다. 이 동물 이웃을 지켜보는 게 마냥 즐거운 나는 혹시나 춥고 어두운 겨울 동안 먹을 게 없을까 봐 마트에서 해바라기씨 같은 견과류를 사서 가끔 우리 집 창문 턱에 몇 개, 그리고 옆집 지붕 위에 한 줌 뿌려놓곤 한다.

이제는 먹을 게 풍부해졌는지 마치 초등학생 저학년 교실에 가면 저마다 떠드는 아이들처럼 정신없이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를 들으면 이 세상은 우리 인간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동물의 움직임과 구조는 사람과 비슷해서 그런지 교감도 잘 되고, 보내는 시간의 흐름도 비슷한 것 같다. 그런데 식물은 조금 다른 느낌을 받는다.

더이상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봄이 오면 오후에 한 번씩 정원에 나가 물을 준다. 정원에는 잘 자라날 수 있을까 싶은 새싹부터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나무까지 다양한 식물이 있다. 꽃을 피우는 식물도 있고, 꽃이 없는 식물도 있다. 향기도 다르고, 향을 내뿜는 시간도 다르다. 마치 내가 샤워한다는 느낌으로 정성스럽게 물을 주다 보면 40분이 넘어가는데, 작업에 대한 생각을 비워내고 기분을 전환하는 데에 적당한 시간이다.

그러다 보면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인간은 다섯 가지 감각을 지니고 있는데, 식물은 어떻게 세상을 느끼며 살아가는 걸까? 그들도 우리처럼 하루를 기준으로 살아갈까? 햇살에 잔뜩 목이 마른 상태에서 맞는 물은 어떤 느낌일까? 또 그게 뿌리까지 전달되어 모든 세포에 수분이 공급되면 어떤 느낌일까? 벌이나 나비·곤충과 소통하는 방법은 무엇일지, 또 강한 바람이나 추위를 견디는 것은 어떨지. 최근 연구에서는 식물에도 뇌가 있어 기억이나 의식에 따라 행동한다는데, 그렇다면 매일 물을 주는 사람을 기억하고 그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증 투성이다.

아무래도 이들이 느끼고 보내는 시간의 흐름은 사람과 다른 것 같다. 자연의 시간. 그것은 우리가 매시간 인지할 수 없지만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는 분명히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이 미처 신경 쓰지 못해 일어난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자연이 선택한 방향이 우리의 기대나 예상을 뛰어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주님의 시간도 이처럼 우리가 느낄 수 없을 만큼 넓을 것이라 생각한다. 매일 하루를 바쁘게, 빠른 생각과 많은 결정을 내리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주님의 시간과 다른 시간 속에 살고 있기에 그 인도하심을 좀처럼 알아채기 힘든 게 아닐까. 그러니 쉽게 자만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세상과 시간을 넓게 바라보려고 노력해야겠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의 바람을 귀기울여들으실 테니, 그것이 우리에게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고, 또 그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테니 말이다.



손일훈 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