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9~26일 방한한 6·25전쟁 때 희생된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순교자 후손들과 관계자들이 한국지부 순교 기념비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 교회 신자들의 크나큰 순교 신심을 느꼈습니다. 돌아가서도 그 신심을 기억하고 한국 교회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격동의 시기 한국에서 선교하다 6·25전쟁 때 순교한 아일랜드 출신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소속 ‘하느님의 종’ 고 안토니오(Anthony Collier)·손 프란치스코(Francis Canavan)·고 토마스(Thomas Cusack) 신부의 후손 10명이 5월 19~26일 방한해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하고 시복을 기원했다. 순교자들의 신앙으로 맺어진 한국·아일랜드 양국 교회 간 선교 역사와 거룩한 신앙 유산을 되새긴 뜻깊은 시간이었다.
이번 방한은 6·25전쟁 발발 75주년이자 하느님의 종 3위 순교 75주기를 맞아 후손들의 자발적 요청으로 이뤄졌다. 6·25전쟁 때 희생된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순교자는 총 7명이다.
1939년 한국에 파견된 고 안토니오 신부는 춘천교구 소양로본당 주임으로 사목하다 1950년 6월 27일 교우를 대신해 북한군에 총살당해 교구 죽림동 성직자 묘지에 안장됐다. 손 프란치스코 신부는 1949년 파견돼 춘천교구 죽림동본당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다 1950년 12월 6일 죽음의 행진에 끌려가 포로수용소에서 병사해 북한 땅에 묻혔다. 이후 죽림동 성직자 묘지에 안장(허묘)됐다.
고 토마스 신부는 1935년 광주대교구 목포 산정동본당 주임 때 북한군에 잡혀 1950년 9월 24일 대전교구 목동성당에서 집단학살로 순교하고, 대전 신학교 성직자 묘지에 안장됐다. 김희중 대주교에게 영세를 준 신부다. 이들 순교자 3위는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에 포함된 시복 심사 대상자들이다.
후손들은 8일간 일정으로 광주대교구·대전·춘천·원주교구 내 사목활동지와 순교 장소를 방문해 피로 증거한 선조들을 기렸다.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와 춘천교구장 김주영 주교를 만나 깊은 신앙 대화도 나눴다.
고 토마스 신부의 조카 딸 스테파니씨는 “우물 안에서 순교하신 이야기를 전해만 듣다가 눈으로 보니 끔찍했던 상황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며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때를 기해 시복되시길 간절히 기도한다”고 밝혔다.
후손들은 방한 중 고 안토니오 신부가 북한군의 총탄에 몸을 던져 목숨을 살려준 당시 소양로본당 전교회장 고 김경호(가브리엘)씨의 여동생 김영자(수산나)씨와도 만났다. 고 신부의 조카 레이첼씨는 “김경호씨가 당시 상황을 기록해 둔 덕에 순교 정신을 이어올 수 있었고, 임시로 묻었던 장소를 알고 있었기에 다시 잘 모시게 됐다”며 거듭 감사 인사를 전했다. 김영자씨는 “먼 타지에 오셔서 순교하신 모든 분을 하느님께서 큰 축복으로 이끌어주시리라 믿는다”며 “후손 여러분도 하느님을 찬미하는 영광된 삶을 이어가시길 기도한다”고 답했다.
고 토마스 신부의 순교터에 자리 잡은 대전 목동 거룩한말씀의수녀회 수녀들은 후손들에게 “순교자들 덕분에 이렇게 기도할 수 있고, 한국 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방문하는 곳마다 신자들도 후손들에게 선조들이 보인 신심에 경의를 표했다.
오기백(성골롬반외방선교회 한국지부) 신부는 5월 23일 후손들과 함께 봉헌한 미사 강론에서 순교자 집안의 믿음을 드높이며 “우리도 순교자의 신앙을 본받아 각자 자리에서 사랑의 실천을 이어가자”고 당부했다. 후손들에겐 감사패가 전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