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면역학과 허준렬 교수가 5월 23일 서울대학교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면역세포의 이중적 역할 규명
자폐 치료의 새로운 길 열어
“과학계도 유기체처럼 협력해야
젊은 과학자에 더 많은 기회를”
어느 날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면역학과 허준렬 교수에게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자폐를 가진 우리 아이는 평생 딱 두 번 말했어요. 그 순간은 마치 나와 아이 사이를 장애라는 구름이 감싸고 있을 때, 한 줄기 빛이 그 구름을 뚫고 아이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았어요. 그때마다 아이는 열이 났죠. 늘 그 순간을 그리워했는데, 교수님 연구를 통해 아이가 왜 말을 할 수 있었는지 알았어요. 자폐 환자들을 위해 연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생명과학자로서 가장 큰 기쁨은 사람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이라는 허 교수는 올해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가 주최한 제19회 생명의 신비상 생명과학분야 본상 수상자다.
임신 중 감염으로 면역세포인 인터루킨-17이 과도하게 생성되면, 이것이 태아에게 자폐 발병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면역세포들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단백질이 태아의 뇌 안에 있는 수용체에 붙어 발달을 방해했던 것이다. 또 염증 반응에서 분비될 수 있는 인터루킨-17을 자폐 환자에게 주사했을 땐 반대로 자폐 증상이 완화될 수 있다는 것도 밝혀냈다. 염증 반응에는 발열 증상이 동반될 수 있다.
허 교수는 이처럼 하나의 면역세포가 상황에 따라 독이 되기도 하고, 약도 되는 현상을 진정한 ‘생명의 신비’라 표현했다. “저조차 이해할 수 없었어요. 더 알고 싶었죠. 몸의 면역 시스템이 과하게 작동하면 자가면역질환에 걸리고, 약하면 다른 병에 걸려요. 건강식품을 광고할 때 ‘면역력 강화’를 강조하곤 하는데, 사실 ‘균형’(항상성)이 중요한 것이죠. 그 균형을 배워가는 것이 제가 걸어가는 길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전 세계 자폐 환자와 가족에게 희망이 된 그의 연구는 중증 자폐 스펙트럼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치료제 개발로 나아가고 있다. 허 교수는 2020년 바이오 기업 ‘인테론’을 설립해 치료제 개발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허 교수는 “제 지식을 바탕으로 자폐 환자들에게 실제적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이 분야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며 “그래서 직접 나섰고, 경구용 치료제 임상시험까지 3년 정도 예상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과학자 간 협력’을 강조했다. “제가 이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신경학과 면역학은 각기 다른 분야인 것처럼 여겨졌어요. 그러나 유기체인 우리 ‘몸’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과학계도 유기체처럼 분야가 달라도 협력해야죠.” 그는 지난해 서울대병원과 하버드 의대를 설득해 협력 연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현재 서울대병원 수련의·전공의 9명이 하버드 연구실에서 연구 중이다.
허 교수는 “젊은 과학자들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울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아울러 “원래 어릴 때 꿈은 ‘비디오 가게 사장’이었는데 그랬다간 넷플릭스 때문에 큰일 날 뻔했다”는 농담을 전하면서 “공부할 여건이 안 되면 비디오 가게를 차리려 했지만 다행히 여러 지원을 받았고, 오늘의 제가 있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과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주저 없이 기회를 찾아나서길 바란다”고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