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향숙 평화칼럼] 되찾은 그림
(가톨릭평화신문)
지난 5월 22일은 “하늘, 땅, 물, 공기, 사람, 벌레는 모두 한 생명”이라며 생명 운동을 펼치신 무위당 장일순(요한 세례자) 선생님이 주님 품에 안기신지 31주년 되는 날이었다. 선생님이 선종하시기 4년 전인 1990년에 나는 그분을 뵈었다. 월간 「생활성서」 편집장이라는 다소 무거워진 어깨를 펴지 못했던 내게 선생님은 자신이 ‘좁쌀 한 알[一粟子]’이라며 융숭히 맞아 섬기셨다. 손수 지으셨다는 원주 봉산동 토담집에서 보낸 선생님과의 하루를 나는 잊지 못한다.
그치지 않고 들려주시는 선생님의 이야기에 나는 거의 얼이 나갈 지경이었다. 동서고금 사상들이 종횡무진 활보하는 그 이야기들을 나는 다 알아듣지 못했다. 특히 동학사상 관련 이야기가 그랬다. 끝없이 이어지는 그분 말씀을 내 작은 그릇으론 다 담지 못해 흘러넘쳤다.
선생님은 그날 아름다운 난과 뜻깊은 말씀이 적힌 시화 두 점을 직접 그려주셨다. 하나는 생활성서사 수도 공동체를 위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 이름을 적은, 나만을 위한 것이었다. 공동체에는 잎이 무성하고 꽃이 가득한 난에 ‘종풍불석향(從風不惜香, 바람에 따라 보내는 향기를 아끼지 않는다)’이라고 써주셨다. 어느 바람에는 향기를 많이 주고 어느 바람에는 향기를 적게 주는 게 아니라 바람마다 그것이 원하는 향기를 아낌없이 다 내준다는 의미로 나는 알아들었다. 선생님은 ‘언제 어디서나 봉사한다’는 뜻이라고 풀이해 주셨다.
나에게는 호기심으로 수줍게 미소 짓는 ‘얼굴 난’에 ‘만물 막비시천주(萬物 莫非侍天主, 하느님을 모시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써주셨다. 모든 것이 다 하느님을 모시는 귀한 존재다. 사람·동물·식물은 물론이고 우리 눈에 죽은 듯 보이는 무생물까지 우주 만물이 모두 하느님을 모시고 있다. 그러니 모든 존재를 다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 모든 것에서 창조주 하느님 모습을 뵙고 섬겨야 한다. 그 어느 것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공동체에 주신 시화는 선생님의 난 치시는 모습과 함께 그달 「생활성서」 기사의 삽화로 실었다. 그러나 내게 주신 시화는 거처를 이리저리 옮기는 동안 잃어버렸다. 살아오면서 잃은 것들이 더러 있지만, 후회를 싫어하는 나는 대개 그것들을 금세 잊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잃고 나서 오랫동안 가슴 아리고 애통했던 기억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국민학교(초등학교) 졸업 무렵, 선친께서 선물로 주신 내 생애 첫 노란 도장이었다. 도장 찍을 일이 없었음에도 너무 좋아 늘 지니고 다녔는데, 어느 날 그것이 내 곁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지?. 또 하나는 바로 장일순 선생님께서 그려주신 시화였다.
몇 년 전, 은퇴해 살 집 하나 마련해 책장을 정리하다 낡은 책 사이에서 선생님이 그려주신 그 시화를 발견했다. 잃어버렸다고 애통해했던 그 귀한 보물을 되찾던 날 얼마나 놀랍고 행복했던지. 되찾은 아들·양·은전? 되찾아 기쁜 성경 속 모든 비유가 떠올랐다. 그렇다. ‘되찾은 그림’이었다! 그림에는 세월처럼 얼룩이 묻어 있었다.
손님이 오면 나는 벽에 걸린 이 시화가 ‘내 보물 1호’라고 자랑한다. 그리고 날마다 그걸 보면서 ‘만물 막비시천주’의 삶을 다짐한다. 이 세상 어느 한 사람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모두를 소중히 모시자. 미생물,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마음 쓰긴 내게 너무 벅찬 과제라, 사람만이라도 소중히 섬겨보자 하지만, 순간순간 잊고 만다. 주님 품에 가기 전 이 귀한 생각이 머리에서 가슴을 거쳐 발끝까지 가도록 날마다 이 시화를 보며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