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땅에 뿌리내린 사랑… 폴란드 출신 수녀의 30여 년

(가톨릭평화신문)
폴란드 출신의 마리안나 수녀가 ‘올해의 이민자상’을 받고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대구가톨릭근로자회관 관장 이관홍 신부 제공


전국 곳곳서 이주민 정착 도와
특별 귀화 자격으로 국적도 취득



“위에서 잔디를 내려다보면 잔디만 보이지요. 무릎을 꿇고 들여다보면 잔디 아래에는 돌도 있고 부서진 가지, 다양한 곤충들이 살고 있어요. 수많은 생명체가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이주민도 마찬가지예요.”

30여 년간 대한민국의 농촌과 산간 지역에서 결손가정 아이들과 이주민을 돌봐온 폴란드 출신 스비에르제브스카 마리안나(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64) 수녀가 ‘제18회 세계인의 날’을 맞아 5월 20일 법무부가 수여하는 ‘올해의 이민자상’ 개인 부문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마리안나 수녀는 “이 상은 이주민을 위해 일하는 수많은 사람을 대표해 받은 것”이라며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을 돕는 일이 인정받고 있고, 또 의미 있게 바라봐주고 있어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1992년 31살의 나이로 한국땅을 밟은 마리안나 수녀는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 있는 여성직장인 기숙사에서 첫 사도직을 시작했다. 마리안나 수녀는 한국어를 배우며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위해 청소와 설거지, 안내 전화 응대 등 다양한 일을 맡았다.

이어 전라남도 영광과 강원도 정선에서 조손·한부모 가정 아이들을 돌보며 공부방도 운영했다. 당시 서울 서초동본당 소년소녀가장후원회 ‘석문복지재단’의 도움을 받아 장학금이 필요한 아동을 연계했다. 배고픈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눠주고, 학습지와 교재도 선물했다. 정선 여성긴급전화 1366에서는 가정폭력 피해로 긴급 대피가 필요한 여성들을 도왔다.

그가 이주민을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한 건 1997년부터다. 인천교구 이주노동상담소를 거쳐 광주대교구 내 첫 필리핀 공동체 형성에도 큰 역할을 했다. 한국 정착과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필리핀 이주여성들을 모아 신앙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후 경기 부천시 역곡의 이주민을 위한 수도회 공동체 ‘국경 없는 친구들’에서 활동했다. 진주 이주여성 쉼터와 안산 엠마우스에서도 봉사를 멈추지 않았다. 현재는 2019년부터 대구대교구 가톨릭근로자회관에서 난민 가정을 돌본다.

마리안나 수녀는 “전남 영광에서 저(외국인)를 처음 본 순수한 아이들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면서 “아이들이 저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얼굴 수술했어요? 어른이 한국말을 이렇게 못해요?’라고 묻던 기억이 난다”며 웃었다.

“이젠 한국에 외국인이 많은 게 전혀 이상하지 않죠. 한국인들은 정이 많고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진심으로 돕고 싶어 하지요. 그런데도 어떤 때는 겉모습과 언어 때문에 다가오길 꺼리는 경우도 있어요. 이주민을 돕는 입장으로 관계가 이뤄지기도 하고요. 이주민과 함께하는 일이 아직은 도전으로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주민과 난민에는 차이가 있다”며 “이주민은 일한 뒤 돌아갈 나라가 있지만, 난민은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난민들은 더 열악하고 보호받지 못합니다. 최근 난민 신청 여성에게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쌀과 기저귀·분유라고 하더군요. 삶에 꼭 필요한 것들이죠.”

시상식에 앞서 특별 귀화 자격으로 대한민국 국적도 취득한 마리안나 수녀는 “제게 한국은 진짜 우리나라가 됐다”며 흐뭇해했다. “수도자로서 언제 어디로 떠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사는 곳이 고향이에요.”

한편 이날 시상식에서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지원해온 구미가톨릭근로자문화센터(센터장 송양업 신부)도 단체 부문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