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와 성 이냐시오

(가톨릭신문)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유명한 고전 문학작품이다. 그런데 주인공 돈키호테를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돈키호테는 ‘정신 나간 사람’이나 ‘과대망상증 환자’가 아니다. 스페인 왕립한림원은 돈키호테를 “자신의 이익보다 이상을 우선시하며, 올바른 대의를 위해 이타적이고 헌신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즉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부조리한 세상에 뛰어든 ‘이상주의자’이자 ‘영웅’인 것이다.


이런 돈키호테의 캐릭터는 스페인의 성인인 이냐시오 데 로욜라(1491~1556)와 닮았다. 이는 필자의 주장이 아니라 20세기 초 스페인의 저명 철학자인 미겔 데 우나무노의 견해이다. 우나무노는 「돈키호테와 산초의 삶(Vida de Don Quijote y Sancho)」에서 두 인물의 행동양식은 물론 성격과 영적인 공통점을 분석했다.


우선 관상과 기질이 유사하다. 둘 다 넓은 이마에 대머리이며 진지하고 분노를 못 참는 다혈질인데,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대개 무인이 될 팔자이다. 독서가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도 같다. 기사 소설을 탐독하다가 자신이 직접 편력기사가 되어 세상의 불의를 평정하기로 마음먹은 돈키호테처럼 이냐시오 또한 예수와 성인들의 전기를 읽다가 그들의 삶을 모방하기로 결심하였다.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편력기사(돈키호테)와 순례자(이냐시오)가 되기 위해 무작정 집을 나선 행동도 흡사하다. 1522년 3월 하순 몬세라트 수도원에 들러 한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청하고 철야 고행을 하는 이냐시오의 모습은 주막집에 들러 주인에게 기사 서임식을 청하고 불침번을 서는 「돈키호테」 1부 3장의 에피소드를 상기시킨다.


한편, 이냐시오는 노새를 타고 몬세라트로 가던 중 우연히 만난 무어인이 성모님을 모욕하고 도망치자 복수의 칼부림을 하기 위해 뒤를 쫓다가 갈림길 앞에서 주저하게 된다. 얼마 전에 거칠었던 과거에서 벗어나 새사람이 되기로 회심했기 때문이다. 그는 고심 끝에 복수의 실행 여부를 하늘의 뜻에 맡기기로 하고 고삐를 늦추어 노새가 가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다행히도 노새는 무어인이 도망간 큰길이 아닌 몬세라트로 향하는 좁은 길로 접어들었다.


이냐시오가 자서전인 「순례자」에서 밝히고 있는 이 일화는 편력기사로 집을 나선 돈키호테가 갈림길을 만날 때마다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는 운명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며 타고 있던 말 로시난테에게 길을 맡기는 장면(「돈키호테」 1부 2장, 4장)들과 유사하다. 우나무노는 이들의 행동을 “하느님의 뜻에 대한 가장 깊은 겸손과 절대적인 복종”으로 해석한다.


이 밖에도 모험에 뛰어드는 용기, 순례적인 삶,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존중, 신앙이 결부된 자신감 등은 물론 쓸쓸하게 맞이하는 임종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여러 면에서 둘은 닮은꼴을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근본적인 공통점은 자신들을 둘러싼 적대적인 환경에 굴하지 않고 이상적인 가치를 추구한 고귀한 정신에 있을 것이다. 우나무노는 이런 이냐시오와 돈키호테를 숭고한 ‘스페인 정신’의 대표적인 사례로 내세웠다.


따지고 보면 성인에게도 국적이 있다. 스페인 출신 성인을 이해하려면 이 나라 사람들의 기질과 민족성을 알 필요가 있다. 이냐시오 성인을 한층 깊이 있게 그리고 정서적으로 느끼고자 하는 분들에게 이 가을, 「돈키호테」의 일독을 권한다.



글 _ 전용갑 요셉(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캠퍼스 스페인어통번역학과 교수, 세계문학비교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