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국제 청년 평화 순례’ 이모저모] 전쟁의 상흔 보듬고 평화의 바람 일으킨 지구촌 청년들

(가톨릭평화신문)

 

 
▲ 국제 청년 평화 순례단원들이 18일 양구 두타연 갈림길에서 기념 촬영을 한 뒤 금강산으로 향하는 길을 가리키고 있다.

 

 


2019 세계 평화의 바람 ‘DMZ 국제 청년 평화 순례’가 8월 22일 마침표를 찍었다. 올해로 다섯 번째였다.
 

 

 

평화를 생각하고 나누며, 평화를 향해 걷고 또 걸은 순례는 힘겨웠지만, 행복했다. 청년들은 6박 7일간에 걸친 평화 순례의 여운을 간직한 채 그 평화로의 초대를 마음 밭에 각인했고, 일상 삶에서 평화를 살아가기를 다짐했다. 휴전선 비무장지대(DMZ) 248㎞를 다 걷지는 못했지만, 질곡과도 같은 74년 분단의 눈물과 아픔, 상처를 돌아보고 되새김질하기엔 부족함이 없는 순례였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정세덕 신부) 주관으로 16일 막을 올린 평화 순례에는 분쟁 지역을 포함해 14개국과 한국 청년들 60명과 봉사자, 스태프까지 100여 명이 함께했다. 정세덕 신부는 22일 파견 미사에서 “사랑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고,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서 “그동안 우리가 나눴던 사랑과 평화, 따뜻함, 하나 됐던 마음을 기억하며 평화로 나아가자”고 당부했다.

 

 

 

 
▲ 국제 청년 평화 순례단원들이 19일 자전거를 타고 철원 평화전망대에서 월정리역을 거쳐 구 노동당사로 향하고 있다.

 


순례의 시작, 금강산전망대·DMZ 박물관

 

 

 

 

 

순례는 강원도 고성과 양구, 철원, 경기도 파주로 이어졌다. 고성 DMZ 평화의 길 구간의 백미로 꼽히는 금강산전망대, DMZ 박물관을 돌아보는 것으로 순례는 시작됐다. 청년들은 1292개의 말뚝으로 이어지는 군사분계선(MDL)과 남ㆍ북방 한계선을 포함한 DMZ 권역을 보며 그 아름다운 생태에 감탄과 함께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DMZ 박물관 관람 뒤 우간다 출신 툿찡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레지나 나카지 수녀는 “평화는 언제나 당신과 나 사이에서 시작됩니다.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아갑시다”라고 쓴 쪽지를 박물관 내 평화의 나무에 매달았다.
 

김현수(21, 인하대 정외과3)씨는 “평화 순례에 앞서 3ㆍ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등 독립운동 사적지를 다녀왔는데, 가슴 아픈 독립운동에 이어 분단 역사를 보며 꼭 평화 통일을 이뤄야겠다는 열망이 더 간절해졌다”고 고백했다.
 

 

6·25 격전지 백마고지 순례
 

올해 평화 순례 코스는 DMZ 평화누리길을 위주로 짜였다. 금강산 전망대에서 동해안 초소로 이어지는 해파랑길 49코스, 백두산부대가 관할하는 양구 두타연, 백골사단 관할 성재산 십자탑 전망대, 철원 평화전망대에서 월정리역, 노동당사에 이르는 자전거 하이킹 코스 등을 통해 평화-생태-역사를 꿰뚫는 감수성을 키웠다. 올해는 특히 1952년 10월 국군과 유엔군, 중공군과 북한군이 열두 차례에 걸친 공방을 벌인 백마고지를 처음으로 순례하고 국군 전사자 844명의 이름을 새긴 백마고지 위령탑 앞에서 순국 선열들에 헌화하고 묵념했다.
 

조형진(다마소, 21)씨는 “대학을 졸업한 뒤 군 입대를 앞둔 처지여서 분단 현장 DMZ를 돌아보는 감회가 더 특별했다”며 “평화에 헌신하는 군인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 한 국제 청년 평화 순례단원이 평화 부채 만들기 시간에 평화에 대한 성찰을 부채에 담고 있다.

평화를 내면화한 강의·토론·활동들
 

평화 순례는 단지 걷는 데서 그치지 않고 평화를 ‘내면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18일과 20일에는 통일부 장관을 지낸 홍용표(프란치스코)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초청, 평화란 무엇인지를 듣고 조별 토론과 함께 발표를 듣는 시간도 마련했다. 아울러 평화 부채 만들기, 자국 소개, 평화 콘서트, 한탄강 래프팅 등을 하며 친교를 다지기도 했다.
 

킬링필드의 땅 캄보디아에서 온 싸이 쏘피웁(26)씨는 “순례 전에는 평화에 대해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순례하며 정말 기쁘고 행복했다”며 “캄보디아로 돌아가면, 작은 단체라도 만들어 평화 체험 행사와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제이미 앤 잉걸(23,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학)씨는 “제각기 다른 평화에 대한 생각을 들으며 평화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한반도통일미래센터 미사 봉헌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주한 교황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 서울대교구 보좌 정순택ㆍ구요비 주교 등도 19일 한반도통일미래센터를 방문해 미사를 봉헌하고,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주관한 만찬에 참석해 평화 순례 소감을 듣고 순례단을 격려했다.
 

슈에레브 대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한국에서의 평화 순례 체험을 행복하게 즐기고 순례를 통해 평화의 가치를 많이 배우라”고 당부했다.
 

염 추기경도 만찬에서 “평화의 바람 순례를 통해 여러분 자신과 친구, 자연, 하느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회복하고 마음에서부터 평화를 선물로 가득 받고 돌아가시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철원 화살머리고지 유해 발굴 현장 방문
 

이번 평화 순례에는 특별히 1953년 6월과 7월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의 두 차례 전투 당시 희생된 한국군과 미군, 프랑스군 유해 발굴 현장에 슈에레브 대주교 등 주교단이 방문, 순국선열을 위한 묵념과 위령기도를 바쳤다.
 

방탄복에 방탄모를 쓴 채 유해발굴 현장을 둘러본 슈에레브 대주교는 “현대 세대는 전쟁을 체험하지도 않았고 전쟁이 얼마나 비참한지 모른다”며 “그래서 우리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순택 주교도 “이념 전쟁 때문에 쓰러진 선열들의 유해 발굴 현장을 보면서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공감했다”며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도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보낸 평화의 편지
 

순례단은 폐막에 앞서 21일 한반도통일미래센터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일일이 서명해 교황청으로 보냈다. 이 서한은 영어와 이탈리아어로 번역돼 조만간 교황청에 전달된다.
 

헝가리 출신 참가자 니콜레트 쾨뢰시(25)씨는 “DMZ 철조망이 슬펐지만, 순례길은 너무도 행복했다”며 “교황님께 편지를 쓰면서 남북한 형제자매들을 위해, 한반도 통일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썼고,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온 교회가 다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