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 시인 탄생 100주년, 구도의 길을 돌아보다

(가톨릭신문)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시 ‘오늘’에서)

시인이 생의 전반을 관통해 추구했던 주제는 단연 ‘영원과 오늘’이었다. 이는 그리스도인에게뿐 아니라 수많은 대중들의 마음에 참 인간으로서 살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화두로 스며들었다. 삶의 매 순간을 구도(求道)로 채우고 이를 시작(詩作)에 담아냈던 시인 구상(요한 세례자, 1919~2004).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 시대의 ‘구도자’라 칭송 받은 그의 삶과 신앙을 돌아본다. 특히 탄생 100주년을 기념, 그의 삶을 복원해 낸 평전이 처음으로 발간돼 눈길을 끈다.

“백 년 전, 이 땅이 해방의 열망으로 꿈틀대던 때 한 시인의 지상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외세 지배, 민족분단과 동족상잔, 그 고난의 역사 속에서 정련된 시인의 문학은 끝내 큰 물줄기를 이루어 사람들의 가슴을 적셨습니다. 영원의 세계를 갈망하던 시인은 비극적 현실을 초월한 새 지평을 열었습니다. 초토(焦土)에서 다시 생명이 피어나길 바라던 시인의 소망은 그리스도교 영성을 관통하여 가혹한 운명의 굴레 속에 주저앉은 사람들 사이에서 진실로 기쁜 소식이 되었습니다.”

구상 시인의 탄생 100주년 기념음악회에 앞서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장 박현동 아빠스가 낸 메시지 일부다. 그 누구보다 충실하게 신앙으로 채우고, 봉헌회원으로서 마무리한 시인의 삶은 성 베네딕도 수도회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시인으로 살았지만 그가 인생에서 첫 번째로 추구했던 것은 문학이 아니라 종교였다.
구상 시인은 1919년 10월 11일(음력 8월 18일) 서울에서 태어나 네 살 무렵 성 베네딕도회 덕원수도원이 자리한 덕원에서 자랐다. 북한 함경도 지구 선교를 맡게 된 아버지를 따른 여정이었다. 열다섯에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고 소신학교에 들어갔지만 문학과 종교 사이에서 갈등하다 3년 만에 중퇴했다. 하지만 대학에서 선택한 전공도 종교과였다.

특히 그는 구체적인 삶과 실천을 통해 그리스도교적 존재론을 성찰했으며 이를 다름 아닌 시에 담아냈다. 늘 겸손하고 선하게 수덕의 삶을 살듯 생활하는 모습에 후배들에겐 ‘성(聖) 구상’, 대중들에겐 ‘구도자’라고도 불렸다. 근검절약으로 모인 돈은 어려움에 처한 문인들과 장애인 등 소외된 이웃, 교회와 문단을 위해 기부해왔다. 한 예로 6.25 때 미군에게서 받은 군복 천을 염색해 두루마기를 만들어 팔순 때까지 입었던 검소한 모습엔 제자들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시인은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으로 나왔지만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는 종군기자로, 이후로도 여러 언론사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반독재 투쟁 등 사회정의 실현에 힘써왔다. 독재정권 전횡으로 옥고를 치른 후엔 사회적 직책을 멀리하고 작품활동을 비롯해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양성하는데 힘쓰며 살아왔다.

그는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프랑스가 선정한 ‘세계 200대 문인’으로 선정됐으며, 대한민국문학상, 대한민국예술원상, 국민훈장동백장 등도 수상했다. 생전엔 한국에서 연작시를 처음 쓰고 또 가장 많이 쓴 작가이기도 했다. 대표작 중 하나인 ‘초토(焦土)의 시’에서는 전쟁의 고통을 초월해 구원의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려냈다. ‘그리스도 폴의 강’은 대표적인 신앙시작으로 꼽힌다. 65편으로 이어지는 각 시들은 존재의 생성과 소멸을 신앙적 직관으로 조명함으로써, 시를 읽는 이들을 자연스럽게 신앙적 세계로 끌어들이고 있다. 물질주의와 현실의 부조리에 일침을 가한 시작들도 다수 선보였으며, 복음묵상집을 비롯해 수상집, 사회평론집, 희곡집 등도 냈다. 특히 연작시선집 「오늘 속의 영원, 영원 속의 오늘」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노벨문학상 본심 후보에도 올랐다. 무엇보다 그의 시작 세계는 가톨릭문학 활성화와 후배 문인들의 활동에 큰 힘이 됐다.

1999년 중환자실에서 메모지에 간신히 쓴, 유언과 같은 한 마디는 여전히 긴 여운을 남긴다. “세상에는 시가 필요해요.” 절망 가운데에서도 인간을 더 사랑하는 실천을 시에 담았던 시인, 그가 밝힌 시는 세상에 필요한 시, 표현에 상응하는 등가량(等價量)의 진실이 담겨 있는 시,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시였다.

한편 올해 구상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전국 각지에선 그의 작품과 생애를 돌아보는 심포지엄과 시비 제막식, 회화전, 북콘서트, 백일장, 평전 출간 등이 이어졌다. 10월 18일에는 서울 종로 JCC아트센터에서 시인의 시를 얹어 만든 가곡 발표회가, 11월 8일에는 서울 영등포아트홀에서 시인의 희곡으로 제작한 연극 공연이 펼쳐진다.

특히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은 11월 2일 오후 2시 수도원 대성당에서 ‘오늘서부터 영원을’을 주제로 구상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음악회를 연다. 사단법인 구상선생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이 주관하는 이날 행사는 전석 초대로 진행한다. 기념음악회 무대에서는 바로크 기악 앙상블 ‘알테 무지크 서울’과 ‘무지카사크라서울 합창단’, 임선혜 소프라노의 연주가 펼쳐진다. 또한 무지카사크라서울 합창단은 구상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우음’, ‘진혼곡’, ‘기도’, ‘초설’ 등의 곡을 선보인다.

아울러 12월 13일에는 영등포아트홀에서 구상문학 세미나와 구상문학상 시상식 등이 열린다.


■ 분도출판사, 구상 시인 첫 평전 발간

지금 우리에게 시는 과연 무엇일까. 그 본령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구상(요한 세례자) 시인의 작품은 가장 적절한 답을 던져주는 듯하다. 시인 스스로가 ‘시와 그 영혼의 진실이 일치하는 삶’을 살았다는 평가를 받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생전에 소박한 진실이 화려한 수사보다 고귀하다는 문학적, 윤리적 당위를 토대로 시작들을 내놓았다. 그의 시는 표현 기법과 언어 미학을 중시하는 한국시의 편향적 흐름에 균형을 잡는 역할도 했다. 반면 철저히 기교를 거부함으로써 비시적(非詩的)이란 부정적 평가를 받기도 했다.

존재의 실상을 응시하여 그 안의 진실을 추구해 간 시인 구상.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펴낸 ‘구도 시인 구상 평전’(324쪽/2만원/분도출판사)은 구도자요 시인으로 살아간 한 인물의 85년 삶을 복원하려는 뜻깊은 시도로 의미를 더한다. 시인에 대한 평전으로서는 첫 작품이기도 하다.

저자인 이숭원 교수(서울여대 명예교수)는 구상 시인에 대해 “세상에는 훌륭한 인품으로 남을 감화시킨 사람도 있고, 독실한 종교생활로 타인의 모범이 된 사람도 있고, 감동적인 문학작품을 창작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도 있지만, 한 몸으로 이 세 분야를 종합해서 실천한 사람은 거의 없다”며 시인은 “진실로 이 셋을 겸한 사람이었다”고 밝혔다. 또한 “그것도 질곡의 시대와 파란의 역사를 넘어서서 개인의 시련과 병고를 극복하고 이룩했으니, 그는 진정한 의미의 구도 시인”이라고 평했다.

평전에서는 시인의 출생과 성장기를 시작으로 월남 후에 겪은 우여곡절, 강직한 언론인의 면모, 시의 은총과 인품에 대한 후일담 등이 이어진다. ‘수도자요 시인으로 살아간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시인이 남긴 ‘초토에서 핀 인간주의’, ‘신앙의 길 구도의 길’, ‘표상과 실재의 일치’ 등에 대해 한 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