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 가득한 예수님표 도시락 700개, 매일 어려운 이웃들에게

(가톨릭평화신문)
▲ 봉사자들이 국을 용기에 담아 포장하고 있다.

▲ 안나의 집 봉사자들이 힘을 모아 만든 도시락 600인분.

▲ 성남동본당의 배려로 11일부터 성당 마당에서 도시락을 나눠줄 수 있게 됐다. 안나의 집 봉사자들이 성모상 앞에서 노숙인과 홀몸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사랑으로 극복하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경기도 성남에 있는 안나의 집(대표 김하종 신부)이다. 안나의 집은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노숙인과 홀몸노인들을 위해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지금은 도시락을 만들어 나눠주고 있다. 하루에 나눠주는 도시락은 평균 600개. 도시락을 못 받는 사람들을 위한 간식까지 준비하려면 하루에 700인분을 만들어야 한다.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나의 집이 이 어려운 걸 해내는 힘은 뒤에서 힘껏 밀어주는 봉사자들과 후원자들에게서 나온다. 본지 기자들도 12일 안나의 집을 방문해 일일 봉사자로 힘을 보탰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시작기도 함께 바치고 ‘시작’

12일 오전 서울 명동 본사에서 차로 40여 분을 달려 안나의 집에 도착했다. 낮 12시 30분쯤 도착해 식당이 있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봉사자가 도착해 음식재료를 다듬고 도시락과 간식을 포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하기 위해서는 앞치마와 위생모, 위생 장갑,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기자들도 서둘러 복장을 착용했다. 기자는 ‘안나의 집’이 새겨진 주황색 앞치마를 하고 싶었는데 크기가 작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잘 늘어나는 고무재질의 검은색 앞치마를 했다. 그러던 중 김하종 신부가 식당으로 내려왔다.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김 신부와 봉사자들은 함께 시작기도를 바친 뒤 다시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간식·도시락 준비, 분업화로 착착

가장 먼저 한 일은 도시락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간식 꾸러미 100개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먼저 빵을 종류별로 골라 4개씩 모아두면 다음 사람이 비닐에 빵을 담고 그다음 사람이 음료와 과일을 담으면 마지막 사람이 풀기 좋게 매듭을 묶는 작업이었다. 작업은 철저하게 분업화돼 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손이 비는 곳에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 들어갔다. 다들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손발이 잘 맞았다. 간식 꾸러미에 담긴 빵과 과일의 종류는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후원자들의 정성으로 마련된 것이기에 그 어떤 것보다도 값진 간식 꾸러미였다.

간식 꾸러미 포장이 끝난 후에는 도시락을 만들어 포장했다. 이날 메뉴는 마파두부 덮밥과 김칫국, 김치였다. 간단한 메뉴처럼 보이지만 600인분을 만들어야 하는 만큼 많은 양의 재료가 필요했다. 밥을 짓는 데 20㎏ 쌀 6포대가 들어갔다. 마파두부에는 두부 9판과 돼지고기 30㎏, 양파 15㎏, 피망 5㎏, 두반장 22㎏이 들어갔다. 또 김칫국과 반찬용 김치 60㎏이 들어갔다.

먼저 반찬으로 나가는 김치를 작은 용기에 담았다. 이어 김칫국과 마파두부 덮밥을 용기에 담았다. 밥을 가장 늦게 담는 것은 조금이라도 따뜻한 밥을 대접하기 위한 마음에서다. 점심을 먹고 갔는데도 매콤한 김칫국과 마파두부 덮밥 냄새에 침이 고였다. 마스크를 벗고 몰래 맛이라도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도시락을 드실 분들을 생각하며 욕심을 내려놓았다.

도시락을 포장하는 과정도 간식 꾸러미 포장처럼 분업화돼 있었다. 봉사자들은 트로트 음악에 맞춰 서로 도와가며 즐겁게 도시락을 포장했다. 처음에는 흥얼거리는 사람도, 어깨를 들썩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중에는 다들 포장에만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기자는 처음부터 노래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테이블이 낮은 데다 계속 서서 작업을 하다 보니 허리와 다리가 아팠다. 시계가 오후 3시 30분을 가리킬 무렵 마침내 600인분의 도시락이 모두 완성됐다.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에 의자에 앉는데 앓는 소리가 절로 났다. 하지만 휴식도 잠시, 600인분의 도시락을 나눠주는 장소로 옮기기 위해 무거운 몸을 다시 일으켰다.



성남동성당 마당에서 노숙인 등에게 나눠줘

도시락 나눔은 안나의 집 맞은편에 있는 성남동성당(주임 최재철 신부) 마당에서 진행됐다. 원래 안나의 집 앞에서 도시락을 나눠줬지만 성남동본당의 배려로 11일부터 성당 마당에서 나눠줄 수 있게 됐다. 봉사자들이 성당 마당에 있는 성모상 앞에 천막을 치고 정성껏 만든 도시락과 간식 꾸러미를 준비했다. 성당 마당은 이미 노숙인과 홀몸노인들로 가득했다.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성당 가장자리를 따라 줄을 섰다.

도시락을 나눠주기 전 김 신부가 봉사자들을 불러 “지금까지 육체적으로 봉사했다면 이제는 사랑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사 잘해주세요”라고 당부했다. 도시락 나눔이 시작되자 김 신부는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며 노숙인과 홀몸노인들에게 다가가 “사랑합니다” 하고 인사했다. 노숙인과 홀몸노인들도 “사랑합니다”라며 화답했다. 도시락을 받은 노숙인과 홀몸노인들은 집으로 가거나 성당 마당 벤치나 의자에 앉아 식사했다. 이들을 바라보는 김 신부의 얼굴에는 기쁨과 행복이 가득했다. 식사를 마치고 떠나는 노숙인과 홀몸노인들은 봉사자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마지막으로 다 먹은 도시락 용기를 정리하는 일이 남았다. 도시락을 깨끗이 비운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기자가 먹고 싶어 했던 마파두부 덮밥을 절반 이상 남긴 사람도 있었다. 역시 입맛은 제각각이다.



숨은 봉사자와 후원자들의 아름다운 마음

안나의 집이 매일 노숙인과 홀몸노인 700명에게 음식을 대접할 수 있는 것은 봉사자들과 후원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발병하고 나서 봉사를 시작했다는 정숙희(체칠리아)씨는 “노숙인들이 식사할 데가 마땅치 않아 걱정하고 있었는데 안나의 집이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는 걸 보고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며 “나가서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힘닿는 데까지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2016년부터 5년째 안나의 집에서 봉사하고 있다는 이숙자(루치아)씨는 “안나의 집에서 봉사하면서 얻는 기쁨이 더 크고 마음의 위로를 받는 것 같다”며 “우리가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고 전했다.

불교 신자인 박수희씨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금요일만 빼고 매일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봉사도 중독된다”는 박씨는 “김하종 신부님이 좋은 일 하시는 것을 보고 또 봉사자들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오기 시작했다”며 “앞으로 코로나19가 잠잠해지고 많은 사람이 봉사에 참여할 때까지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텔레비전을 통해 소식을 듣고 온 봉사자들, 고등학생, 신혼부부 등 30여 명의 봉사자가 이날 함께 했다.



▲ 김하종 신부가 도시락을 나눠주기 전 성남동성당 마당을 돌아다니며 노숙인과 홀몸노인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안나의 집 ‘지휘자’ 김하종 신부


김하종 신부는 이 구역의 작업반장이다. 도시락을 만드는 곳에도, 성당 마당에도, 인근 공원에도 어디에나 김 신부가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며 ‘하루에 몇만 보나 걸으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김 신부는 쉴 새 없이 여기저기를 다니며 모든 것들을 챙긴다. 혹시 주민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인근에 있는 쓰레기도 줍는다. 하지만 얼굴에는 피곤하거나 힘든 기색이 없다. 오히려 힘이 넘친다. 김 신부는 특히 11일부터 성남동성당 마당에서 도시락을 나눠줄 수 있게 되면서 요즘 더 행복하다. 그는 “성당 마당에서 도시락을 나눠줄 수 있어서 너무 아름답고 감사하다”며 “이 자체가 선교활동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런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도시락 나눠주는 일이 예수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김하종 신부. 김 신부는 오늘도 예수님께 기도를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