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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단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물걸레로 복도를 청소하고 있는 올리바씨. 마스크를 쓰고 택배 배송에 여념없는 박민욱씨. 공적 마스크 판매로 약국 앞에 줄선 사람들. 늘 웃으며 광역버스를 운전하고 있는 기사 이기수씨. |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이 일고 있다. 개인은 외출이나 모임을 자제하고 학교는 개학이 연기됐다. 재택 근무하는 회사도 상당수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를 둘 수 없는 이들도 있다. 대중교통 수단을 운전하는 기사와 주변의 청결을 담당하는 미화원, 약사와 택배 기사 등이다.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바쁜 나날을 보내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백영민ㆍ도재진 기자
미화원 - 청소로 새벽을 열다
오전 8시, 서울에 있는 한 회사의 사무실 청소를 마친 방 올리바(65)씨가 청소 직원 휴게실로 들어간다. 환기 시설도 없는 3.3㎡ 남짓한 공간이 방씨를 비롯한 청소 직원 5명의 휴식처다. 방씨는 “사무실에 직원이 출근하기 전에 청소를 마치려면 새벽 4시에는 일어나야 한다”며 “물 마실 시간도 없이 일해도 제시간에 청소 마치기가 빠듯하다”고 말했다.
청소일을 한 지 3년째인 방씨는 오전 청소를 마치고 잠시 쪽잠을 자고, 점심을 해 먹고 다시 청소하고 퇴근하는 일상을 되풀이한다. 코로나19 확산 이후에는 평소보다 더 열심히 청소 일을 한다. “걸레도 더 신경을 써서 빨고 소독제를 이용해 화장실 문 손잡이 등 구석구석 청소를 해요.”
반대로 근무 환경은 열악해졌다. 감염 확산을 막고자 청소 일을 하는 동료들은 각각 다른 층에 있는 임시 거처에서 휴식을 취하는 형편이다. 마스크 구하기도 쉽지 않다. 방씨는 “바빠서 약국에서 마스크를 배포하는 시간에 맞춰 줄을 설 형편이 안 된다”며 “회사에서 마스크를 두어 장 주지만 일주일 사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남들은 청소일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일에 보람을 느껴요. 새벽 공기를 마시며 출근하는 것도 좋고 직원들이 ‘덕분에 깨끗이 사무실을 쓸 수 있다’고 말해주시는 것도 고마워요. 건강하게 이 일을 오래 했으면 좋겠어요.”
광역버스 기사 - 오늘도 안전 운행
경기도 용인시 기흥에 있는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 사색의 광장.
광역버스 기사 이기수(스테파노, 60)씨가 운전하는 광역버스가 오전 한 차례 운행을 마치고 차고지로 들어선다. 이씨는 “오늘은 일곱 차례 서울 논현과 기흥을 오가는 일정”이라며 “코로나19로 손님들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집에서 나오지 않기에 유동인구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면서부터 이씨는 종일 마스크를 쓰고 일하고 있다. 이씨는 “남들은 코로나19 감염이 무섭지 않으냐 묻기도 하지만 마스크를 쓰고 운전하고 버스 청결에 신경을 쓰고 있어 괜찮다”며 “청소 아주머니가 하루 두 번 소독제로 버스를 청소하고 저도 2~3번 버스 구석구석을 청소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씨는 마을버스를 시작으로 시내버스와 광역버스 등 버스 운전 경력만 30년이 넘는 베테랑 운전기사다. 긴 세월만큼 버스에 관련된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었다. 신종 플루와 사스 사태 때도 버스 운전대를 놓지 않았다. 버스 안에서 승객이 심장마비로 쓰러졌지만 이씨의 신속한 대처로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운행 중 차량에서 불이나 승객을 대피시켰던 아찔한 기억도 있다.
이씨는 “국가적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으면 좋겠다”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저력이 있어 이 어려움을 극복하면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매일 밤 9시 코로나19 극복을 청하는 기도도 바치고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지향으로 묵주기도도 틈틈이 바친다”고 했다.
“동료 기사들과 일주일에 한 번 무의탁 어르신들을 찾아 목욕 봉사를 하는데 코로나19로 찾아뵙질 못했네요. 이 어려운 시기가 끝나고 목욕 후 웃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보고 싶습니다.”
약사 - 공적 마스크 판매로 바쁜 하루
점심시간을 30여 분 앞둔 서울 중구의 한 약국. ‘12시부터 공적 마스크 판매’라는 문구가 창에 붙어 있지만, 약국 앞에는 직장인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시계가 12시를 가리키자 손님들이 약국 안으로 들어오고 약사들이 주민등록증을 확인한 후 공적 마스크를 내어주는 과정이 반복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약사들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윤○○(35) 약사는 “하루 150명에게 공적 마스크를 판매하지만, 구매 문의는 그 몇 배에 달한다”며 “마스크를 구하지 못한 손님 중에는 ‘나는 어떻게 마스크를 사라는 거냐’며 화를 내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윤씨는 “직장생활로 줄을 서기 힘든 분들, 구매가 힘든 가족의 마스크까지 구해야 하는 분들의 어려움을 이해한다”고 했다. 마스크의 공적 공급 정책이 실패를 반복했고 마스크 5부제 역시 완벽한 정책이 아니기에 그동안 쌓인 분노가 애꿎은 약사에게 향하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힘들기는 윤씨도 마찬가지다. 중국 관광객이 많은 지역 특성상 지난해 12월부터 마스크 구매 관련 응대를 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더욱이 윤씨는 임신 7개월에 접어든 임산부다. 윤씨는 “배 속에 아이가 있다 보니 남들보다 걱정이 많이 된다”며 “마음 같아서는 일을 잠시 쉬고 싶지만 내가 쉬면 결국 다른 사람의 부담이 커진다는 생각에 약국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씨는 코로나19로 인한 서로의 어려움을 공감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랜 시간 줄을 서서 구한 마스크 2장을 손에 쥐고 기뻐하는 손님들을 보면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위로가 되는 말을 건네며 힘든 시기를 잘 견뎌냈으면 좋겠어요.”
택배 기사 - 경기 침체 몸으로 느껴져
서울 명동과 충무로 지역 사무실을 오가며 물건을 배송하는 박민욱(36)씨는 “가정집 위주로 택배 하는 분들은 배송 물량이 늘었다고 들었는데, 사무실 위주 택배는 오히려 배송 물량이 줄었다”며 “하루 130~150건 하던 배달 건수가 30건 정도 줄었고 수익에도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재택근무가 늘며 발생한 기현상이다.
박씨는 새벽 6시 30분에 일어나 밤 10시 30분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간다. 정신없이 배송을 마치면 거래처에 가서 고객이 택배로 보낼 물건을 받아 물건을 분류하고 차에 실어서 정리해야 일과가 끝난다. 워낙 바쁘게 살다 보니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하다고 여길 틈도 없었다.
코로나19로 고객의 얼굴을 볼 일도 줄었다. 박씨는 “예전에는 대면 배송이 원칙이었는데 지금은 비대면 배송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문 앞에 배송 물품을 놓고 사진을 찍어 고객께 전송하거나 따로 전화한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코로나19로 돌아가신 분들도 많고 배송하러 다니다 보면 폐업한 가게가 적지 않다”며 “경기도 너무 침체되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감염이 걱정되기는 하죠. 그렇다고 하던 일을 안 할 수 없잖아요. 하루빨리 코로나19가 끝나고 마스크를 벗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