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여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과도한 국방예산 줄일 수 없나

(가톨릭신문)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구약성경 이사야서 2장 4절 말씀이다. 같은 내용의 성경구절이 요엘서 4장 10절과 미카서 4장 3절에도 나온다.

재판관과 심판관이 되시는 ‘그분’은 곧 하느님이다. 사람이 재판관과 심판관이 되면 칼을 휘두르고 창을 들어 살상을 행한다. 성경은 사람이 사람을 심판하지 말고 칼과 창을 보습과 낫으로 만들어 농사 도구로 선용해 사람을 살리라고 가르친다.



■ 한반도는 67년간 ‘정전’이 계속되는 화약고

그렇다면 한 민족이면서도 남북이 갈라져 있는 한반도는 어떨까.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산다고 하기에는 실상은 너무나 냉혹하고 비정하다.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맺어지면서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세계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병력과 무기들이 집중돼 있다. 재래식 무기와 최첨단 무기를 가리지 않고 서로의 위용을 자랑하듯 각축을 벌이는 것이 남북 간 군사대치의 현실이다. 한반도는 ‘전쟁을 일시적으로 중단한’ 상태가 67년간이나 계속되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화약고다.


■ ‘2020 세계군축행동의 날’이 이야기하는 것

지난 4월 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참여연대, 녹색연합, 전쟁없는세상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모여 ‘2020 세계군축행동의 날’ 기자회견을 열고 군축(軍縮)을 요구하는 피켓시위와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올해 세계군축행동의 날은 4·15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고 5월 30일 제21대 국회 임기 시작을 앞두고 열려 언론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군축은 국방비 감축과 직결되고 국방예산을 심의하는 기관이 국회이기 때문이다. 국회는 국방예산을 줄여 사회복지나 의료, 교육예산을 증액할 권한을 갖고 있다.

새로운 국회 임기 시작과 더불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온 나라가 신음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하듯 2020 세계군축행동의 날에 참석한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군사비를 줄여 기후 위기와 코로나19 대응에!”라는 구호를 외쳤다. 국방예산을 줄여 기후 위기와 코로나19라는 시급하고 절박한 과제 해결에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 대한민국 국방예산 어느 정도 규모인가

96만7452원. 이 액수는 2020년 우리나라 국방예산 50조1527억 원을 올해 인구 약 5184만 명으로 나눈 수치다. 이 말은 지금 막 태어난 갓난아기부터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노인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국민 모두가 96만7452원을 국방예산으로 부담한다는 뜻이다. 또한 1년만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이 이상의 액수를 죽을 때까지 내야 한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국방예산은 연평균 7.5%씩 증가해 왔다.

4월 27일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ion, SIPRI)가 발표한 2019년 세계 군사비 지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군사비 지출 규모는 세계 10위다. 2013년부터 같은 순위를 줄곧 유지하고 있다.

시각에 따라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특수 상황에서 국민 1인당 국방예산 부담액이 100만 원 정도라면 ‘그다지 많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다. 이에 대해 ‘피스모모’ 평화/교육연구소 소장 이대훈(프란치스코)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과도한 국방비에 익숙해 있어서 한국이 세계적으로도 얼마나 군비 경쟁에 몰두해 있는지 느끼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발표한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이 4인 이상 가구의 경우 100만 원이고, 1회 지급되는 점과 비교한다면 전 국민이 매년 내는 국방예산 규모가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실례를 들었다. 아울러 “국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경찰이나 소방에 투입되는 예산과 비교해도 국방비는 엄청난 수준”이라고 밝혔다.


■ 국방비 줄일 수 없나

2020 세계군축행동의 날 행사 중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과도한 국방예산을 비판하면서 “최근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을 위한 재원으로 국방예산 9000억 원을 조정해 사용하기로 한 것은 정말 반가운 결정”이라고 환영한 부분이다.

이 교수는 “정부가 국방예산을 다른 예산으로 조정해 사용한 것은 아마 처음이고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라면서 “평화프로세스와 글로벌 평화외교를 통해 남북한의 적대관계를 종식하면 당연히 국방예산을 대폭 줄일 수 있고 그러면 국방비가 정상화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근본적으로 “남북이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을 맺게 된다면 휴전선은 사라지고 대규모 전투병력을 갖출 필요가 없게 됨으로써 국방비를 줄여 삶의 질과 생활안전을 개선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