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온전한 믿음 / 한성숙

(가톨릭신문)
어느 날 아이에게 찾아온 병마로 일상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다.

소아암 병동에서 보내는 낯선 시간을 적응해 가며 힘든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아이의 병은 치료하는 의사와 함께 엄마 역할이 중요한데, 그건 아이가 의사보다 엄마를 더 믿고 의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듣자 아이 앞에서 더 이상 눈물을 보일 수 없었다.

마시는 물과 먹는 음식, 환경까지 모든 것은 제한된 생활이었다. 독한 항암제는 아이 몸속에 모든 세포들의 활동을 멈추게 했고, 바람 앞에 촛불처럼 작은 질병조차 막아내지 못할 만큼 면역력은 너무 약해졌다. 나는 힘든 시간을 하느님과 성모님께 의지하며 견뎠고, 마음이 무너질 땐 성당에서 혼자 울었다. 항암치료와 함께 치료 중간마다 하는 골수검사는 제일 두려운 시간이었다. 큰 바늘이 작은 몸속에 들어와 허리가 끊어질 듯한 통증을 참는 아이를 지켜보는 건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예수님 십자가 수난을 함께 하신 성모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 아이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주님과 성모님을 수없이 부르며, 고통이 어서 지나가길 간절히 기도했다.

병원에서 만난 아이들은 또래 친구부터 언니 오빠, 또 어린 아기들도 있었다. 가끔 치료 도중 하늘의 별이 되는 아이들을 보며 살면서 외면했던 죽음이 가까이 있고,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지난 시간을 반성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매일의 시간이 얼마나 큰 은총이고 기적인지 삶의 소중함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첫 영성체를 한 덕분에 매주 목요일마다 병자 영성체를 위해 신부님과 수녀님이 오셔서, 아이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

어느 날 수녀님께서 아이에게 치료가 끝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제한된 생활이라 먹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을 아이 대답은 의외였다. ‘다시 성당에 나가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고 했다. 대답을 들으신 수녀님은 기뻐하시며 기특해 하셨고, 하느님을 생각하는 아이의 믿음을 보며 나는 마음이 숙연해졌다.

병원생활에 적응하며, 숙제처럼 미뤄둔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성경 말씀과 기도를 통해 삶의 중심을 내가 아닌 하느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 그러자 이 시련을 이겨낼 힘과 용기가 생겼다. 기적은 내 의지가 아니라 온전히 하느님을 믿고 기도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아이를 통해 알게 해 주셨다. 지금의 시련이 힘들지만, 힘든 시간에도 함께 계신다는 믿음이 생기니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한성숙(레지나) (제1대리구 율전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