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코란 품고 부부의 연 맺은 제주도 여자와 예멘 난민

(가톨릭평화신문)
▲ 4월 7일 제주 향교에서 백년가약을 맺은 하민경씨와 무함마드 아민씨.(왼쪽 사진) 두 사람은 제주 탑동에서 아살람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평화의 섬, 제주 탑동에 가면 ‘아살람’이라는 할랄 음식점이 있다. 아살람은 아랍어로 ‘평화’라는 뜻으로, 할랄은 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60석 규모의 식당 문을 열자, 하민경(체칠리아, 40)씨가 손님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있다. 주방에서는 요리사 무함마드 아민(37)씨가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들은 부부다. 지난 4월 7일 제주 향교에서 신자들과 예멘 난민들이 하객으로 참석한 가운데 백년가약을 맺었다. 식당의 벽에는 결혼사진과 두 사람의 결혼 소식을 다룬 잡지 기사가 붙어 있다. 가톨릭 성경과 성가책, 아랍어 교재도 꽂혀있다.

“저는 정말 완전히 복 받았어요. 저희는 서로 신의 선물이라고 해요.”(하민경씨)

하씨는 삶에서 결혼이라는 계획이 없었다. 국악을 전공하고 초등학교에서 풍물을 가르치며 예술가로 살았던 그는 2018년 초 우연하게 SNS에 올라온 다급한 글을 보게 된다. “비도 오고 쌀쌀한 날이었어요. 예멘에서 온 사람들이 제주도에 왔는데 갈 곳이 없어 노숙하고 있다는 글이었어요.”

건물 지하에 30평 규모 연습실을 갖고 있던 하씨는 난민들에게 문을 열어줬다. 처음에 15명이 오더니, 20~30명으로 금방 늘어났다. 예멘인들은 잠시 머물다가 일자리를 구하면 나갔고, 또 새로운 예멘인들이 들어오기를 반복해 4개월간 150여 명이 거쳐 갔다.

“저는 연습실 문만 열어줬을 뿐인데, 성당에서 빵 갖다 주고, 친구들이 이불이랑 구호물품을 가져다줬어요.”



난민 도우며 자연스럽게 친해져


하씨는 연습실 문은 열어줬지만, 그곳을 떠날 수 없었다. 전쟁을 피해 온 예멘인 중에는 총상을 입은 사람도 있었고, 전쟁의 트라우마로 구토를 멈추지 않는 이도 있었다. 하루에 5~10번씩 병원을 데리고 다니고, 교통카드 충전부터 도와야 할 일이 많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인터넷에는 당시 제주에 예멘 난민이 500여 명이나 들어왔다며 비난 댓글이 쏟아지던 때였다.

“저는 이 친구들이 너무 순하고 좋은 사람들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비난성 댓글이 눈에 안 들어왔어요.”

문제는 식사였다. 하씨와 친해진 예멘인들은 할랄 음식점을 할 생각이 없느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제주에 할랄 음식점이 있었지만, 난민들이 사 먹기에는 턱없이 비쌌고, 인도 음식은 입맛에 안 맞아 힘들어했다. 아살람 식당은 이렇게 탄생했다. 예멘인들은 요리 솜씨가 뛰어난 친구를 소개해줬고, 하씨는 같이 식당 준비를 하면서 사랑에 빠졌다. 한국인 남자 중에서도 찾을 수 없던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들 전통 혼례식은 그야말로 축제였다. 예멘인들은 혼례식 내내 춤을 췄다. 신랑의 어머니 자리에는 제주 중앙본당 신자가 자리를 채워줬다. 하씨 부모 김성렬(마리아)ㆍ하동철(요셉)씨는 이들의 결혼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하씨 어머니는 무슬림 사위를 이해하고 싶어 한국어 코란을 읽었고 지금은 영어 회화를 배우고 있다.

하씨는 제주 출입국ㆍ외국인청 직원들이 마련해준 감사패도 받았다. 내전으로 어려움에 처한 제주 예멘 난민 신청자들에게 국적과 종교를 초월한 보편적 인류애를 실천해준 것에 감사와 존경을 담은 선물이다.

종교는 다르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종교를 인정해준다. 남편 무함마드 아민씨는 요리를 하다가 하루에 5번 기도 시간이 되면 식당에 마련된 기도실에 들어간다. 하씨는 예멘 난민과 결혼한 제주도 사람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할 뿐이다.

하씨는 “우리 사이에 알라도 하느님이고, 하느님도 알라”라며 “이름이 다른 같은 하느님을 믿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고 털어놨다.



서로는 신이 준 선물


제주에 와서 배 타는 일을 했던 아민씨는 “아내는 신이 준 선물”이라며 “바다에 있을 때 제주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족을 꾸리고 싶다고 매일 기도했는데 그 소원을 들어주셨다”며 흐뭇하게 웃었다. 둘은 예멘 내전이 하루빨리 종식돼 예멘에서 결혼식을 한 번 더 올리는 게 꿈이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