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출신이지만 좋은 한국인이 될 거예요”

(가톨릭평화신문)
▲ 시리아 출신 난민으로 귀화한 아메드 라바비디씨는 “의사소통에 힘들어하는 난민들을 도와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저는 한국을 정말 좋아해요. 한국 음식과 문화 다 좋아해요. 제주도에서 제가 이방인이라는 것을 잊고 살고 있어요. 이제 대학에 가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는 게 꿈이에요.”



제주교구 이주사목센터에서 난민 사업


젓갈과 닭볶음탕을 좋아하는 시리아 출신 난민 아메드 라바비디(27)씨가 한국인으로 귀화했다. 지난 6월 17일 국민선서를 하고 귀화증서를 받았다. 시리아 내전을 피해 제주에 발을 디딘 지 8년 만이다. 그는 지난해 1월부터 제주교구 이주사목센터 ‘나오미센터’에서 난민 사업을 맡고 있다.

“2018년 8월, 제주에 예멘 난민들이 들어왔을 때 저는 카페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당시에 출입국 사무소에 예멘 사람들이 정말 많았는데, 한국 직원들과 의사소통이 안 되는 거예요. 통역이 필요하면 연락을 달라고 했는데 전화가 왔어요. 제주도에는 아랍어를 쓰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법무부 출입국사무소는 아메드씨와 6개월 아랍어 통역 계약을 했고, 급여를 지급했다. 출입국사무소에서 통역 근무와 함께 나오미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조건이었다. 출입국사무소의 계약 기간은 종료됐고, 지금은 나오미센터 직원이 됐다. 인건비는 재단법인 ‘바보의나눔’에서 지원한다.

아메드씨는 2012년 12월 한국에 왔다. 그 해 7월, 아메드의 고향인 알레포에서 반군과 정부군의 교전이 시작됐고, 여러 번 목숨을 잃을 뻔했다.

“18살은 군대를 가야 하는 나이이거든요. 시리아에서 군대에 간다는 것은 시위하는 시민들을 죽여야 하는 거니까요. 죽이거나 죽어야 하는 거죠.”

아메드씨는 먼저 한국에 들어와 자동차 부품 회사에 다니는 남동생을 따라 한국행을 택했다. 2013년에 난민 신청을 했지만 인도적 체류 지위를 받고, 2018년에 귀화 신청을 했다. 이제 법이 바뀌어 인도적 체류자는 귀화 신청을 할 수 없다. 그는 한국에서 거주하는 시리아 출신 난민 1200여 명 중에서 유일하게 한국인으로 귀화했다.

그러나 귀화 과정이 수월했던 건 아니다. 난치성 질환인 크론병에 걸려 큰 수술을 받았지만,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인권단체에서 모금해 치료비를 대줬다.

“혼자서 아플 땐 다시 돌아갈 생각도 했지만 돌아갈 순 없었어요. 갈 곳이 없고 내쳐지는 느낌이었지만 어떻게든 여기서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난민 도울 수 있어 기뻐

그는 한국어 공부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귀화 시험을 위해 한국의 역사와 법, 문화를 열심히 공부했다. 한국 생활에 힘들어하는 난민 친구들에게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의사소통이 힘든 난민들을 도와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친한 한국인 형이 한 명 있다. “인도음식점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사장님 지인이었어요. 그 형은 제가 제주에 집이 없다는 걸 알고 형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의 빈방 하나를 내줬습니다. 돈은 안 받았어요. 형은 가족 같은 존재예요. 귀화할 때 등록지를 쓰는데 게스트하우스의 주소가 제 등록지(본적)가 됐어요. 하하.”

나오미센터 김상훈(안드레아) 사무국장은 “제주에서 유일하게 아랍어와 한국어를 잘하는 친구로, 난민 담당 업무를 잘 해내고 있다”며 “이곳에 있는 난민들은 모두 아메드 형처럼 살고 싶어 한다”고 칭찬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