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 키운 첫 마음 기억하며 교구에 헌신하겠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 신임 춘천교구장에 임명된 김주영 주교임명자(가운데)와 김운회 주교, 사제들이 21일 임명 발표 직후 감사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김주영 시몬 신부님을 제8대 춘천교구장으로 임명하셨습니다.”

21일 오후 8시 춘천교구청 경당. 춘천교구장 김운회 주교는 이날 “너무 기뻐서 임명 발표를 한시라도 빨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며 새 주교 탄생 소식을 직접 전했다. 교구 설정 81년 만에 교구 출신 사제의 첫 교구장 주교 임명 소식에 경당에 모인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 대표들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김운회 주교는 “작년부터 기다린 일이었는데, 요나가 하느님 말씀 안 듣고 도망 다니다 고래 뱃속에서 지낸 것처럼 김 신부님도 엄청난 일을 받아들이는 데에 애를 많이 쓰셨다”며 “결국 불러서 달래고, 야단도 쳤다. 안 받아주면 제가 퇴임을 못 하니까”라며 그간의 사정을 재치있게 전했다.

임명 발표 직후 바로 김 주교 임명자 주례로 감사 미사가 봉헌됐다. 이날은 뜻깊게도 김운회 주교의 주교 수품 18주년 기념일이기도 했던 것. 김주영 주교는 “주교님, 감사드리고, 사랑합니다. 제 옆에 계속 계셔주시길 감히 청한다”며 평소 김운회 주교를 아버지처럼 여기고 챙겨온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김주영 주교는 미사 중 강론을 통해 “오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에 임명된 것은 신앙의 모범이신 성모님의 삶과 말씀을 깊이 제 마음에 새기라는 뜻으로 다가온다”며 “어린 시절 복사를 하며 성소의 꿈을 키우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봉사자가 되고자 새긴 첫 마음을 기억하며 눈물로 이 직무를 받아들였다”면서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김 주교는 “하느님 백성 모두가 일치하고 하나 되어 지역사회와 나아가서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두렵고 떨리지만 제 옆에는 존경하는 든든한 사제단이 있고, 사랑하는 교우들과 수도자들께서 기쁘게 도와주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새 주교의 강복을 받은 참석자들은 다과 자리에서 담소를 나누며 새 주교 탄생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 김주영 주교와 김운회 주교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주영 주교는 5대째 신앙을 간직해온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친 김기성(루카, 77) 옹과 모친 이연순(헬레나, 73) 여사는 1970년 3월 아들이 태어난 지 나흘 만에 주님의 자녀가 되도록 세례성사로 이끌었고, 이후 늘 “세상일보다 신앙이 먼저”라고 가르쳤다. 옹기장이였던 무명 순교자 집안 분위기 속에서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던 할머니의 믿음을 바탕으로 김 주교는 복사를 서고 본당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제 성소의 꿈을 키웠다. 부친도 젊은 시절 사제 성소를 지녔었다고 한다.

김 주교는 “어린 시절 성당의 멋진 형들은 모두 신학생이었다”며 “신학생 시절, 공소 가정 방문을 다니면서 교리공부도 도와주며 어려움 가운데에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시는 어르신들을 뵙고 더욱 사제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밝혔다.

김 주교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행동파’, ‘열정적인 사목자’, ‘내유외강형’, ‘운동 마니아’라고 입을 모았다. 본당 2곳의 주임을 지낸 것을 제외하면, 줄곧 교구 교육국장, 성소국장, 사목국장, 교회사연구소장 등 교구 사정을 돌봐야 하는 자리에 있어왔다. 사이클과 배드민턴, 테니스, 등산 등 못하는 운동이 없을 정도로 활동적인 데다, 선후배들의 요청이나 모임에도 언제든지 달려가 함께하고, 해결해주는 행동파다. 교구 사제단 117명 가운데 사제 수품 순서로 딱 중간에 위치한 김 주교는 김운회 주교와 원로 사제들에겐 아들처럼, 후배 사제와 신학생들에겐 형, 삼촌처럼 두루 챙겨왔다고 한다. 후배 사제들에겐 자신이 선물 받은 옷이나 선물을 매번 기꺼이 내어주고, 고 장익 주교가 은퇴한 뒤에도 매일같이 전화하고 필요한 것을 가져다 드리는 등 겸손과 자상함을 겸비한 사제로 평가받고 있다.

오랫동안 교회사연구소장으로서 교구사를 연구하고, 각종 학술발표회를 이끌어온 덕에 교구의 어제와 오늘을 잘 알고 있는 사제이기도 하다. 또 올해 교구 사목국장이 된 이후에는 사목연구부를 만들어 교구 사목 방향에 관해 열정적으로 아이디어를 나눠오는 등 2006년 이후 줄곧 겸직하며 1인 3역을 해왔다.

김 주교와 동창인 김동훈(춘천 애막골본당 주임) 신부는 “주교님과 원로 사제들에겐 늘 불편한 것은 없는지 연락드리고 살피고, 후배들에게도 모두 인정받는 사제”라며 “동기이지만 무척 존경하고, 내면에 지닌 섬세함과 순수한 마음으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두루 발휘하실 것”이라고 전했다.

교구 사목국에서 함께 일해온 이경화(필로메나) 수녀는 “어려운 분들이 사무실을 찾아오면 늘 ‘그냥 보내지 말라’며 여비를 챙겨드리고, 건강 악화로 그만두시게 된 택배 기사께도 잊지 않고 홍삼을 선물하시는 등 연민의 마음이 참 깊으신 분”이라고 귀띔했다.


▲ 김주영 주교가 학생들에게 식사를 직접 나눠주는 모습.



▲ 김주영 주교가 신자들과 순례에 함께 나서는 모습.



김 주교는 북한 교회와 남북 관계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김 주교는 신학교 대학원 시절 북한 선교와 관련해 논문을 썼고, 이후 교구 한삶위원회에서 사목하면서 교구가 북강원 지역에 연탄 전달을 하던 때에 직접 다녀오기도 했다. 강원 화천의 하나원에서 출소한 새터민들의 가정을 일일이 방문하기도 했고, 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총무가 된 2015년에는 주교단과 함께 평양 장충성당 등 북한 교회 방문도 다녀오는 등 분단된 교구로 남아있는 춘천교구와 한국 교회를 위해 필요한 사목을 두루 해왔다.

같은 효자동본당 출신 선배 사제인 김학배(교구 사회사목국장) 신부는 “주교님은 본당 신학생 가운데 막내였는데, 공부도 잘하셨고, 정도에 어긋나는 일도 하지 않는 모범적인 분”이라며 “막내 신부가 주교님이 되셔서 꼴찌가 첫째가 된 셈이다. 사제들 모두 힘을 합쳐서 교구를 이끌어 가시는 데 힘이 되겠다”고 전했다.

김주영 주교는 “우리 교구가 무엇보다 말씀 안에 하나 되고, 교구 역사 안에 살아 숨 쉬는 자랑스러운 역대 교구장 주교님과 사제, 평신도들을 본받아 하느님 백성 모두를 사랑하며 교구를 위해 헌신하겠다”며 “여러분의 기도를 부탁드리며, 저도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