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과 강진으로 고통받는 미얀마 위해 경청·연대 우선해야

(가톨릭평화신문)
1일 미얀마 아마라푸라에서 이재민들이 식량과 구호품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대규모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3000명을 넘어선 가운데, 가톨릭 구호 서비스(CRS) 등 인도주의 단체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식량과 식수·생필품을 지원하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고 있다. OSV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0년 회칙 「모든 형제들」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 종교와 국경을 넘어서는 ‘보편적 형제애’를 강조했다. 경제체제와 ‘구조적 악’으로 인한 양극화 속에 ‘강요된 가난’의 수렁에 빠져 있는 이들을 위해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고 대화하며 주님이 선포하신 구원 사업을 수행해나가자고 제시한 것이다. 이 가운데 맞이한 2025년 희년은 ‘은혜의 해’로서 세상의 소외된 이들과 연대하는 희망의 순례 여정으로 꾸며지고 있다.

이를 위해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원장 김동원 신부, 이하 연구원)은 5일 수원교구청에서 ‘아시아의 가난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주제로 제21회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교회가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을 바라보며 그들과 함께하며 희망의 순례자로 살아갈 방안을 성찰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연구원은 이를 통해 아시아에서도 더욱 극심한 정치적 격변을 겪으며 큰 신앙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얀마의 상황을 공유하고 그 안에서 교회 역할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

 
수원교구 총대리 문희종(앞줄 가운데) 주교를 비롯한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제21회 심포지엄 참석자들이 5일 수원교구청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기조강연 : 만달레이대교구장 윈 대주교 
강진으로 참석 못하고 서면 요약 발표 
가난한 이들과 직접적 교류 강조
구조적 부정의에 관심 가져야  

발제와 토론 
미얀마 내 중재자로서 교회 역할 기대
한국 내 미얀마 이주민들에 대한 
심리적·경제적 배려 필요 





‘가난한 이들과의 대화’가 곧 복음 선포

이날 심포지엄은 미얀마 만달레이대교구장 마르코 틴 윈 대주교가 ‘아시아의 가난한 사람들과의 대화 방향’을 주제로 한 기조강연, 그리고 미얀마 삔우륀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원 원장 이연학 신부의 ‘미얀마 사회현황 및 교회의 대응활동 : 만달레이대교구와 로이코교구를 중심으로’란 주제 발표로 문을 열었다. 다만 틴 윈 대주교와 이 신부가 3월 28일 미얀마 만달레이 인근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한국에 오지 못한 탓에 연구원 원장 김동원 신부와 아시아평신도지도자포럼의 황경훈(바오로) 박사가 서면으로 전달받은 내용을 요약·정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틴 윈 대주교는 기조강연에서 “교회의 단일한 목적은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라며 “복음 선포를 위해서는 안주하는 삶에서 벗어나야 하며 이를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난’은 자연적 결과가 아니라 음식과 주거·교육에 있어 제대로 된 혜택을 받지 못한 이들에게 부과되는 ‘불공정한 의도의 결과’이기에 이를 극복하고 하느님 나라를 삶 속에서 실현하기 위한 ‘우리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틴 윈 대주교는 특히 이러한 ‘참여’가 구체화 된 것이 바로 가난한 이들과의 대화, 즉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연대하며 정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연대하는 것은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과 같다는 게 틴 윈 대주교의 설명이다.

다만 틴 윈 대주교는 오랜 내전과 다툼으로 어려움에 처한 미얀마의 현실을 돌아보며 “교회의 지도자들이 미얀마와 그 너머의 가난한 사람들이 마주한 구조적 부정의에 맞서 얼마나 협력했는지 질문하게 된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풀뿌리 차원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직접 교류하며 깊이 뿌리내린 구조적 문제를 이해하며 이를 해결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미얀마의 아픔, 전 세계 교회가 함께 나눠야

이어진 제1발제에서는 이연학 신부가 미얀마 현지에서 목격한 미얀마 교회의 참혹한 현실을 소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함께 걸어갈 방향’을 모색했다. 이 신부는 “2021년 군부 쿠데타 이후 미얀마 교회는 전국 16개 교구 가운데 절반 이상이 전투 지역 혹은 피난민 밀집 지역이 돼 사목활동과 운용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특히 군부와 반군의 전투가 치열한 지역에 위치한 만달레이대교구·로이코교구는 다수의 성당이 파괴되는 것은 물론 교구 공동체 전체가 붕괴 위기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신부는 이러한 위기가 미얀마 교회에 대한 하느님 백성의 ‘새로운 기대’, 즉 “인도적 지원을 넘어 ‘하느님 백성과 함께 고통을 나누고 희망을 증언하는 신앙 공동체’로 변모할 것을 요구하는 사목적 정체성과 사명이 조명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교회가 군사적 중립성과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연대하는 것은 물론 미얀마의 평화 구축 과정에서 윤리적·도덕적 권위를 지닌 중재자로서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내전은 물론 뿌리 깊은 민족 갈등으로 미얀마 사회 전체가 융합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얀마 교회가 사회 중심이 되어주길 바라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신부는 이러한 ‘새로운 사명’을 향한 순례가 미얀마 교회를 넘어 전체 보편 교회가 함께 걸어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 신부는 “미얀마 교회·사회가 겪고 있는 고통과 시련은 단지 한 지역에 한정되는 인도주의적 위기가 아니라 교회와 인류를 향한 고통스러운 물음이자 부르심”이라며 “이 부르심에는 미얀마 교회뿐만 아니라 보편 교회를 포함한 전 세계 지역 교회 모두가 미얀마에서 다시 고난을 겪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가 되어 아픔과 절박한 희망을 나누고 희망의 순례자이자 증언자로 함께 걸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5일 수원교구청에서 열린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제21회 심포지엄 중 발제자와 논평자들이 종합토론 시간인 ‘성령 안에서의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



국내 미얀마 이주민 위한 배려·연대 강조

심포지엄에서는 국내 가난한 이들, 특히 전쟁을 피해 한국으로 찾아온 미얀마 이주민을 위한 연대와 배려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시간도 마련됐다.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송주영(데레사 연구원과 미얀마인 유학생 에이띤(서울대 한국어교육학과 박사과정)씨는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미얀마 사람들과의 설문을 토대로 재한 미얀마인들이 마주한 어려움을 조명한 내용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의 미얀마 이주민들이 마주한 가장 큰 문제는 ‘체류 자격’이었다. 에이띤씨는 “현재 한국에 머물고 있는 미얀마인들 중 다수는 군부 정권에 대항해 ‘시민불복종운동(CDM)’에 참여했던 이들로, 군부로부터 직·간접적인 폭력과 보복조치를 당하고 있다”며 “이들은 이력 탓에 본국으로 귀환할 수 없어 비자 발급·연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주한 미얀마대사관 역시 여권 연장 및 발급을 거부하면서 많은 이들이 한국 체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우려했다.

발표자들은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한국 내 미얀마 이주민을 위한 심리적·경제적 배려의 필요성도 강변했다. 에이띤씨는 “CDM에 참여했던 미얀마 사람들은 과거 내전 등을 통해 겪은 직·간접적 국가 폭력으로 인한 심리적 트라우마와 불안정한 지위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받고 있다”며 “고국을 그리워하며 한국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열어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