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봉 주교 선종] 눈물과 사랑·존경 담아 ‘작은 예수’ 하늘로 보내드리다

(가톨릭평화신문)

13일 안동교구 목성동주교좌성당에서 거행된 두봉 주교 선종 미사에 참여한 신자들이 두봉 주교의 시신이 안치된 유리관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 순간 두봉 주교가 남긴 말 
 신자들이 두봉 주교에게 하고픈 말 

 모든 이에게 예수님 사랑을 
 주교·사제들에게 모범 보인 목자 
 타종교인과 비신자들도 함께 기도 





“70년 동안 사랑하고 행복했습니다. 내가 참 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순수한 사랑이시고, 가장 순수한 행복이시다’. 살아보니 그 말이 맞아요. 그래서 신부 되는 삶을 살기를 잘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성모님 감사합니다!”

14일 안동교구 목성동주교좌성당에서 거행된 초대 교구장 두봉 레나도 주교의 장례미사. 연이은 고별사에 대한 답사로 생전 녹음한 두봉 주교의 육성이 흘러나오자 신자들은 눈물을 훔치면서도 저마다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2024년 4월 10일 공교롭게도 두봉 주교가 선종하기 딱 1년 전 남긴 말이다.



사랑하는 삶이 행복이란 걸 보여줘

1954년부터 한국 교회와 사회를 위해 헌신한 71년 동안 언제나 하회탈 닮은 환한 미소와 쾌활하고 소탈한 모습으로 모두의 사랑을 받은 ‘작은 거인’ 두봉 주교. 한 점 부끄럼 없이 ‘기쁘고 떳떳하게’ 평생을 살아온 까닭일까. 정든 목자와 작별하는 신자들 표정에선 슬픔보다 사랑과 존경의 감정이 묻어났다. 이날 장례미사에만 한국 주교단을 비롯한 1500여 명이 자리해 두봉 주교가 남긴 사랑을 새기고 그가 영원한 천상 안식에 들길 기도했다.

두봉 주교는 6일 급작스러운 뇌경색으로 시술을 받고 회복하던 중 나흘만인 10일 하느님 곁으로 돌아갔다. 그가 고통 중에도 남긴 마지막 말은 “(고해)성사” 그리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였다.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는 장례 미사 강론에서 “‘감사합니다’란 말은 두봉 주교님이 생전에 가장 많이, 자주 사용하신 말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상투적인 인사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감사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씀”이라며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바로 행복이라는 삶의 진리를 몸으로 보여주고 일깨워주신 두봉 주교님께 정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미소 천사, 예수님을 닮은 분

권 주교는 “두봉 주교님은 몸과 마음으로 가난하게 사는 삶이 오히려 쉽고 복되다는, 역설적인 삶을 사셨다. 가난한 이들과 조건 없이 베풀고 나누셨다”고 전했다. 또 “상황이 좋든 나쁘든 선교사로서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누구에게나 하느님 나라와 복음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자 하셨다”면서 “그래서 기쁘고 떳떳하게 평생을 사신 두봉 주교님을 주변 사람들은 ‘작은 예수님’이라 불렀다”고 말했다. 장례 미사에 참여한 교구민들은 두봉 주교의 생전 익숙했던 면모가 언급될 때마다 그를 떠올리며 숙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청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을 통해 애도 메시지를 전했다. 파롤린 추기경은 “교황께서는 두봉 주교의 선종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하셨다”며 “오랜 세월 두봉 주교의 선교 열정과 헌신에 깊은 감사를 표하셨다”고 밝혔다. 이어 “교구장 권혁주 주교를 비롯한 안동교구 전체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동료 성직자들에게 진심 어린 애도와 위로를 전하셨다”고 했다. 메시지를 대독한 주한 교황대사 조반니 가스파리 대주교도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해 열정과 헌신으로 봉사한 두봉 주교의 삶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청 복음화부 첫복음화와 신설개별교회부서 장관 직무대행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과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도 조전을 보내왔다. 유 추기경은 특히 “두봉 주교님이 시복시성되길 온 마음으로 바란다”며 “그분이 복자와 성인이 돼서 우리에게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주님의 삶을 본받아 살겠다고 다짐하자”고 전했다.

염수정 추기경은 “두봉 주교님은 늘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사시면서 억울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에게 손수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셨다”며 “저의 사제생활에 ‘거울’과 같은, 삶을 따르고 싶은 분이었다”고 말했다. 또 “1970년 새 사제가 되기 위해 피정할 때 김수환 추기경께서 두봉 주교님을 피정 지도 사제로 배정해주셨는데, 그때 주교님이 보여주셨던 열정이 지금도 감동적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는 “마음속에 마르지 않는 기쁨의 옹달샘이라도 있는듯 미소 천사처럼 웃으시는 주교님 모습은 인자하신 예수님을 참 많이 닮으셨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지상에서 하늘나라를 앞당겨 사셨던 그 모습은 오래 우리 안에 남아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줄 것”이라며 “우리 모두 주교님 좌우명처럼 ‘기쁘고 떳떳하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피와 땀으로 한국 교회를 일군 파리외방전교회 출신 마지막 주교이자 교구장이었던 두봉 주교. 마침 1969년 그가 착좌한 7월 25일은 먼 선배인 브뤼기에르 주교가 1832년 초대 조선대목구장 임명 사실을 알고 선교지를 향한 여정을 시작한 날이었다.

 

 

 

두봉 주교의 장례미사에 참여한 여성 수도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14일 목성동주교좌성당에서 거행된 두봉 주교의 장례 미사에 참여한 박원갑 전 경상북도향교재단 이사장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두봉 주교가 준 사랑 고이 간직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 하대건(크리스토프 베라르) 신부는 “지난 화요일 병원에서 뵀을 때 두봉 주교님은 말씀은 못 하셨지만, 눈빛으로 미소를 지으셨다”며 “예수 그리스도는 두봉 주교님의 삶이었고, 선택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두봉 주교님을 따뜻하게 맞아주고 동행해준 안동교구와 한국 교회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안동교구 사제단 대표 최숭근(북면본당 주임) 신부는 “작고 가난한 농촌 교구이지만 저희가 자부심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쁘고 떳떳하게 사신 두봉 주교님의 모습을 기억한다”며 “어머니 같은 품으로 저희를 안아주신 두봉 주교님과 함께여서 행복했다. 정말 사랑한다”고 추모했다.

수도자 대표 윤말희(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 한국관구장) 수녀는 “주교님은 저희 수도자들의 친구이자 든든한 지원자셨다”며 “그토록 그리던 주님 얼굴을 직접 뵙고, 부활하신 주님의 기쁨을 누리시며 내내 행복하시라”고 기도했다.

안동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송규흠(아우구스티노) 회장은 “아픈 세상을 안타까움으로 살았던 예수님처럼 뜨거운 가슴으로 저희를 품어주신 주교님의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고이 간직하겠다”고 전했다. 고별예식은 대구관구장 조환길 대주교가 주례했다. 운구차로 옮겨진 두봉 주교의 시신은 교구 농은수련원(경북 예천군 지보면) 내 성직자 묘원에 안장됐다.

이날 장례 미사에는 필립 베르투 주한 프랑스대사와 정계 인사는 물론, 대한불교조계종 대원사 주지 도륜스님과 경상북도향교재단(유림) 박원갑 전 이사장 등 이웃종교인과 비신자들도 참석했다. 승복이나 갓 차림의 이들이 고개 숙여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는 장면은 생전 화합을 중시하던 두봉 주교의 소신을 떠올렸다.



아버지같은 분이셨는데

두봉 주교와 46년간 알고 지낸 심영란(엘리사벳, 인천교구 선학동본당)씨는 “친정아버지와 같은 존재셨다”며 “다음 주에 찾아뵙기로 했는데 못 기다리시고 돌아가셨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심씨는 1979년 유신 정권의 농민 탄압 사례인 오원춘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고 정재돈(비오) 전 가톨릭농민회장의 아내다. 당시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 총무였던 남편이 체포되자 그는 교구청을 찾아 두봉 주교 앞에 엎드려 울었다. 두봉 주교는 등을 두드려주며 “엘리사벳, 언제든 울고 싶으면 찾아와요”라고 위로했다.

심씨는 2022년 남편이 선종한 뒤 두봉 주교와 나눈 메신저 대화를 보여주며 말했다. “주교님, 따뜻하게 함께 계셔주셔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저희 남편하고 잘 계시다가 제가 갈 때 또다시 뵀으면 좋겠어요.”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