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신앙] (45) 보이지 않는 힘(전성호 베르나르도, 경기 효명고 과학교사)

(가톨릭평화신문)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1년 앞둔 1944년, 미국의 시사 잡지 「LIFE」는 ‘스페이스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체슬리 본스텔의 그림을 게재했다. 「타이탄에서 바라본 토성」이란 제목의 이 그림은 토성의 위성 타이탄에서 토성을 보고 있는 듯한 사실적인 묘사로 전쟁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우주에 대한 호기심과 모험심을 자극했다. 토성에는 태양계 행성 중 가장 크고 아름다운 고리가 있다. 1609년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통해 토성의 고리를 최초로 관측하고 토성에 귀가 붙어있다고 표현했는데, 망원경으로 바라본 토성의 고리는 그야말로 경이롭다. 하지만 토성은 지구 부피의 760배나 되는 거대한 덩치에 비해 표면은 가스로 구성되어 속은 대부분 비어있으며 평균 온도는 –180℃로 매우 차갑다.

이러한 토성의 이미지를 잘 표현한 음악이 있다. 1919년 영국의 작곡가 구스타브 홀스트는 태양계 행성들을 주제로 한 대규모 관현악곡인 ‘행성’을 작곡했다. 그는 천문학이 아닌 점성술에서의 행성 배열인 ‘화성-금성-수성-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 순으로 곡을 나누고 각 행성에 해당하는 그리스 신화 신들의 이름을 표제로 붙였다.

토성(土星)이란 이름은 고대 중국의 천문학에서 흙의 성질을 가졌다고 여겨져 붙여졌는데, 서양에서는 로마 신화 속 농업의 신에서 유래한 새턴(Saturn)으로 불렸다. 동·서양이 각기 토성을 흙 이미지와 농업의 신으로 빗댄 점이 서로 일맥상통한다는 것이 신기하다.

홀스트의 ‘행성’ 중 5번째 곡인 토성은 ‘황혼기를 가져오는 이(the Bringer of Old Age)’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이 곡은 인생의 황혼기에서 느낄 수 있는 공허감·성숙·완성의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명상적인 곡이다. 여름의 맹렬한 더위가 한풀 꺾인 9월은 해가 진 후 동쪽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토성을 밤새 관측할 수 있는 시기다. 토성이 지구와 태양의 반대 방향에 위치하여 지구-태양-토성이 일직선으로 늘어설 때를 충(衝, opposition)이라 부르는데, 올해 9월 21일 일요일은 토성이 가장 밝게 보이는 충의 시기다.

토성은 맨눈으로는 별인지 행성인지 구별이 어렵지만 망원경을 이용하면 고리를 가진 토성을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태양계의 유일한 항성(별)인 태양과 행성인 토성의 주요 구성 원소가 수소와 헬륨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태양은 수소와 헬륨이 모인 성운이 거대한 중력에 의한 수축 작용으로 내부 온도가 올라가 핵융합 반응을 시작하며 빛을 내는 별이 되었다. 하지만 토성은 중력이 약해 빛을 내는 별이 되지 못하고 가스로 구성된, 덩치만 크고 차가운 떠돌이 행성이 되었다. 중력의 차이가 별과 행성의 생성 운명을 결정한 것이다.

어찌 보면 사람에게도 태양의 중력과 같이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다. 그 힘은 어떤 이에게는 종교적 신앙일 수도 있고 개인적 신념이나 철학 또는 특정 이데올로기일 수도 있다. 밤하늘의 토성을 보며 잠시 생각해본다. 태양의 중력처럼 거대한 힘으로 나를 지탱해주는 삶의 구심력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야 하는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필리 2,15)

전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