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회귀 시도에 맞서 ‘NO’라고 외친 한일 그리스도인들

(가톨릭평화신문)
일본 오나가와 원전 재가동으로 핵발전 재개 시동
일본 정부, 방사능 피해·예방 대책 마련엔 미온적 
 


 
일본 오나가와 원자력발전소 홍보센터 앞마당에서 촬영한 오나가와 원전 일대. 철조망과 절벽으로 가려져 원전이 잘 보이지 않는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지 14년 7개월여가 흘렀다. 이 과정에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를 겪었고, 방사능이 유출되며 ‘탈원전’ 바람이 불었다. 더불어 올해는 일본 본토 원폭 투하 80년이라는 기념비적인 해다. 하지만 일본 사회는 방사능의 위험성을 잊은 듯 동일본 지역 오나가와 원전을 재가동하며 원자력 산업이 고개를 치켜들고 있다.

일본 사회가 ‘핵 위협’을 잊은 듯 보이지만 한쪽에선 여전히 방사능 피해를 알리고 있다. 일본 가톨릭교회를 비롯해 오나가와 원전 재가동을 저지하려 노력해온 이들이다. 10월 11~14일 일본 센다이교구에서 열린 일본 주교회의 정의평화협의회 주최 ‘제42차 정의와 평화를 위한 전국대회’에서는 지진 피해와 핵 위협이 상존하는 지역을 순례하고 앞으로의 길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위원장 박현동 아빠스)를 중심으로 꾸린 한국 순례단은 오후나토 순례 등 전국대회에 참여했다. 한국 순례단은 전국대회 중 둘째 날 열린 심포지엄과 일본 주교회의 정평위 분과가 마련한 9개 분과 세미나 중 2개 분과회에 참여했다. 후쿠시마·오나가와 원전 등 방사능 피해에서 자유롭지 못한 일본의 실상이 터져 나왔다.

 
일본 정의와평화를 위한 제 42차 전국대회에 참여한 일본 신자들.



사고를 되돌아보다

고다 가즈오(전 도쿄대교구 보좌) 주교는 기조강연에 나서 2011년 원전 사고 당시 기억을 증언했다. 고다 주교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부터 수년간 후쿠시마현 구호활동에 나서왔다. 고다 주교는  “원전 사고로 피난한 주민들은 장기적 이재민이 됐고, 장기 피난으로 인한 원전사고 피해자가 더 많다”고 지적했다. 

방사능 피해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후쿠시마 사고 실상을 전한 후쿠시마대 이공생명공학부 다카세 츠키코 준교수(부교수)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현장을 봤는데, 1960년대 갖춰진 시설과 다르지 않았다”면서 “핵발전은 전혀 새로운 기술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변수에 따라 방사능 피해 정도가 달라지기에 예측할 수 없고, 지금도 돌아갈 수 없거나 살 수 없는 지역이 있다”고 전했다.
 
한일 주교 및 사제단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졸속한 원전 회귀

일본 정부는 전력 수요 대책을 원전에서 찾으려 한다. 일본 사회 인식 역시 원자력 발전에 대한 호감도가 증가하는 중이다. 2023년 2월 일본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일본 주민 과반수가 원자력 발전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대지진 이후 처음으로 찬반 비율이 역전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2월 제7차 에너지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화석에너지를 줄이고, 친환경 에너지 발전 비율을 증가시키겠다고 표명했다. 동시에 원자력 에너지 발전 비중 역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다카세 교수는 “최근엔 후쿠시마 원전 인근 데이터가 잘 공개되지 않는 등 후쿠시마 원전에 대한 인식이 잘 계승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미야기 탈원전 바람의 모임’ 다테와키 아키히로 사무국장은 “동일본 대지진 진앙지는 후쿠시마보다 오나가와가 더 가깝다”며 “오나가와 원전은 쓰나미로 지반침하가 일어났고 4기 중 3기가 고장 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17년 조사에서 원전에 균열이 1900개 이상 발생했고, 손상은 60군데 있었다”며 “오나가와 원전은 후쿠시마 원전과 같은 비등수형 원자로(BWR)”라고 지적했다.

사고 시 명확한 피난 계획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오나가와 원전 재가동 금지 소송단 전 사무국장 히노 마사미씨는 “원전 5~30㎞ 이내 주민들은 제시간에 피난 가지 못하고 집에서 대기해야 한다”며 “내부 대기 정화를 위한 양압화 시설을 짓겠다고 하지만 비용이 비싸고, 수용인원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이어 “고등법원도 피난계획에 실효성이 결여됐음을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NO'라고 말해야 한다

일본 주교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인간 존엄과 야만성에 반대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고다 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을 인용해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하다. 우리는 대화 가능성을 포기해선 안 된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화해야 하고, 전쟁과 위협 속에서도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이타교구장 모리야마 신조 주교는 폐막미사 강론에서 “하느님께 사랑받는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어떠한 명분으로도 인간 존엄과 자유를 권력으로 억압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개인이 더욱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돼 예언자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일본 센다이=이준태 기자 ouioui@cpbc.co.kr



“핵 극복은 신앙인의 책무, 재생에너지로 창조질서 보전”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총무 양기석 신부 인터뷰 


 


“핵(원자력)발전은 기후위기의 대안이 아닙니다. 공동의 집 지구와 인류, 수많은 생명을 위해 핵발전을 극복하는 것이 신앙인의 책무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와 일본 주교회의 정의평화협의회 주최로 매년 양국을 넘나들며 이어온 한일탈핵평화순례가 올해 11번째 를 맞았다. 이 순례를 처음부터 주관해온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총무 양기석(종교환경회의 상임대표) 신부는 “핵발전소가 인류에 가장 위험한 시설 중 하나임을 거듭 확인했다”며 이번 대회 참가 소감을 전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한일 순례단은 한국 고리·월성 원자력발전소(원전)와 일본 후쿠시마·오나가와 원전 인근의 실태를 살펴봤다. 양 신부는 “핵발전소는 사고 발생 시 세계 어디에서도 수습이 불가능하고,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격리할 장소와 기술도 없다”며 “원전 인근 지역 주민 재산권과 환경권·생존권이 심각하게 침해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80년 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돼 인류는 핵 위협을 체감했다. 양 신부는 “두 발의 핵폭탄으로 전쟁은 종식됐지만 엄청난 살상력과 피폭자들의 피해들을 살펴본다면 핵무기는 반인륜적 전쟁 도구임을 잘 알 수 있다”며 “전쟁 억지력이란 명분으로 핵무기를 개발하고 보유하는 현실이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양 신부는 “하느님께서 요청하시는 보편적 인류애를 구현하고 지키고자 하는 선한 이들의 연대는 진정한 평화를 이루는 요소가 될 것”이라면서 “핵무기·핵발전소가 없는 세상이 진정 평화로운 세상”이라며 그리스도인들의 연대를 요청했다.

아울러 그리스도인들에게 생태적 회개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 시대는 핵발전소 인근 지역민들을 비롯해 피폭 노동자들, 미래 세대에 죄를 짓고 있습니다. 핵발전소 등 전력원의 이용은 구원의 여정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선택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창조질서를 보전하고자 우리 삶을 차지하는 것들을 잘 살피고 정말 중요한 것을 선택할 용기를 내야 합니다.”

양 신부는 “전 세계 글로벌 기업 400개 이상이 이미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참여를 선언했고, 구글 등 상당수 기업도 이미 RE100을 실현했다”며 “인공지능(AI) 전력 수요가 급증할 것이란 예측에도 기후위기의 올바른 대응은 태양광·풍력 등 친환경 재생에너지 전환”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친환경 재생에너지는 지역 분산이 용이하고 에너지저장시스템(ESS) 발달로 재생에너지 간헐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나라에 건립 예정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경우 10기가와트 이상의 전력 수요가 예측되는데,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전남 지역으로 예정부지를 이전하면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센다이=이준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