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 걷고 기도하고] 성 베네딕도 문화영성센터

(가톨릭신문)

경북 칠곡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성 베네딕도 문화영성센터’는 한국관광공사가 올해 7월 테마로 선정한 ‘불편한 여행지’다. 디지털 기기와 분주한 일상에서 잠시 떨어져 고요와 침묵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 주목받은 것이다. ‘불편함’이라기보다 익숙한 자극을 내려놓고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마련해 주는 장소라는 의미다. 2024년 5월 문을 연 센터는 수도원 고유의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신축 시설을 갖춰 현대인들이 머물기에 쾌적하면서도,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낸 절제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머무름과 침묵, 기도 속에서 마음의 쉼과 영적 양식을 전하고 있는 센터를 찾았다.




고전과 현대, 세상과 성소의 경계


왜관역에서 10분쯤 걸어 수도원에 다다르면 성스러운 작은 마을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수도원 입구에서 바로 보이는 센터는 건축계 거장인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노출콘크리트 건물이다. 1928년 세워진 옛 왜관성당 곁에 자리해 예스러움과 현대의 미가 대비되며 서로를 더 돋보이게 한다.


수도원에는 1968년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피정의 집이 있었지만, 건물이 낡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시설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숲이었던 부지에 건물을 신축하기 위해 8년간의 구상과 회의가 이어졌다. 그러던 중 때마침 승효상 건축가가 천주교 시설을 짓고자 하는 원의를 갖고 있음을 알았고, 많은 설계도를 제작한 끝에 완성된 디자인으로 2년에 걸쳐 건축이 진행됐다.


센터는 ‘선’이라는 기본 개념을 가진 ‘경계 위의 집’이다. 이 집을 통해 하느님 나라로 간다는 뜻이다. 승효상 건축가는 이곳을, 세상의 경계 밖에 있는 수도원을 동경해 찾아온 사람들이 힘을 얻는 장소로서 철저한 고독과 깊은 묵상의 삶을 제공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특히 큰길과 맞닿은 서측에 100m 넘는 길이의 콘크리트 벽을 세워 물리적으로 세상과 분리했다. 벽에 난 좁고 기다란 틈으로는 햇빛과 세상 풍경이 새어 들어온다.




건물을 통해 바깥을 누리다


서측 콘크리트 벽과 건물 사이에는 중정 ‘하늘정원’이 자리하고 있다. 센터의 모든 층에서 유리 벽을 통해 정원을 바라볼 수 있다. 정원에는 붉은 열매를 맺는 팥배나무를 심어 새들과 공간을 공유한다. 그 뜻을 아는지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정원 가득하다. 바닥에 난 정돈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하얀 성모자상이 은은한 기쁨에 잠겨 있는 듯한 표정으로 서 있다.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크리스티나 수녀의 작품이다.


하늘정원부터 4층 하늘성당까지 이어지는 외부 계단은 성 베네딕도의 계단이다. 끝에는 낭떠러지와 난간만이 존재한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표현한 것이다. 2~4층 계단에는 기도소로 가는 다리가 있다. 삼각 모자를 쓴 기도소 나무문에 가느다란 스테인드글라스 조각이 박혀 있다. 내부는 한 평 남짓이지만, 높은 천장 때문에 좁은 느낌이 경감된다.


하늘성당에는 제대도 감실도 없지만 공간 자체에서 거룩함이 느껴진다. 수도원의 다른 십자가와 달리 하늘성당 첨탑 십자가는 왜관 시내를 향한다. 고깔 모양 첨탑 안을 들여다보니, 베네딕도의 별이라 명명된 빛살들이 긴 꼬리를 사방으로 뽐내며 빛나고 있다.


수도원에 들어오면서부터 까마귀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했는데, 실제로 첨탑 십자가가 세워진 뒤부터 까마귀가 자주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까마귀와 성 베네딕토(480?~547)에 얽힌 일화가 떠오른다. 성인을 시기한 누군가의 음모로 독이 든 빵을 먹을뻔했을 때, 까마귀가 빵을 물고 가버려 성인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베네딕토 성인의 이콘과 그림 속에 까마귀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거룩한 향기 가득한 내부


1층 하늘정원에서 경당으로 향하는 길. ‘선’과 ‘빛’, ‘그림자’의 조화를 꾀했던 건축가의 의도대로 우측 창틀이 만든 그림자의 선들이 경사로를 장식한다. 아래로 향하는 경사로는 지하무덤으로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설계했다. 창밖으로는 추모벽이 보인다. 수도원에 머물다 세상을 떠나게 될 분들의 이름을 새길 곳이다. 아프리카에서 구해 제작한 육중한 나무문을 당기자 12m의 높은 천장 끝까지 거룩한 향기가 가득한 공간이 나타난다. 경당이다.


제대 오른쪽 십자고상은 최종태(요셉) 작가의 작품이다. 그 주위로 열두 사도를 뜻하는 사각형의 붉은 빛들이 세상으로 퍼져나가 예수님을 섬기고 있다. 고상 아래 감실을 둘러싼 붉은빛은 그리스도께서 성혈로서 늘 존재하심을 상징한다. 돌아온 탕자가 새겨진 감실은 수도원 금속공예실 작품이다.


왜관수도원 유리화 공예실에서 만든, ‘선’을 강조한 은은한 빛깔의 스테인드글라스가 경당 분위기와 잘 어우러진다. 나무 제대와 의자 등은 수도원 목공소에서 제작했다. 센터 내 대부분의 가구는 수도원 목공소에서 만든 것이다. 파이프 오르간은 독일에서 기증한 연습용 악기로 마치 경당의 구조에 맞춰 만들어진 것처럼 공간과 조화롭게 들어서 있다.


센터 1층에는 벽면 가득 망치가 전시된 ‘망치실’도 있다. 한 환경 운동가가 모아 기증한 것인데, 수도회의 ‘기도하고 일하라’는 모토와 잘 어울린다. 센터 와 하늘다리로 연결된 마오로관은 1957년 지어진 건물을 센터 건축 때 함께 리모델링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천장을 뜯어내니 지붕의 잘 짜여진 목재 구조가 나와 그대로 보존하고 노출했다. 피정 강의가 주로 이뤄지는 마오로관 대강당은 수도원의 은인 고(故) 구상(요한 세례자) 시인과 그의 친형 하느님의 종 구대준(가브리엘) 신부의 이름을 따 ‘구상·구대준 홀’로 불린다.


센터 곳곳에 자리한 하삼두(스테파노) 화백의 작품은 수도자들의 기도 준비 모습이나 성 베네딕토의 「수도 규칙」이 묘사하는 장면을 담았다. 그림 속 수도자들은 2차원의 경계 안에 있지만, 실제로 수도원 대성당에서 만난 수도자들과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일하고 기도하는 그들의 모습은 모두 경건하며, 현실과 그림 사이의 경계마저 흐려진다. 그렇게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고 하나가 되는 그날, ‘마지막 때’를 묵상하며 나는 경계 위의 집을 나선다.





■ 성 베네딕도 문화영성센터 피정 안내 성 베네딕도 문화영성센터는 기도 안에서 쉼과 영적 풍요를 선사하는 다양한 피정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영성 배우기 피정’을 비롯해 성모승천·성탄·부활 등 전례 시기 맞춤 ‘전례피정’도 열린다. 5~11월에는 ‘한Ti 가는 길’, ‘군위 사유원과 함께하는 문화 피정’, ‘가을 문화 피정’도 마련된다. 여름에는 ‘수도 생활 배움 피정’이 열리며, 6~9월에는 평화의 참된 의미를 배우는 ‘평화 학교’가 열린다. 이 외에도 본당이나 각 단체에서 위탁이나 자체 피정을 진행할 수 있고, 휴식형 개인 피정도 가능하다. 숙소는 1인실과 2인실이 있다. 피정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순례 길잡이
- 주소: 경북 칠곡군 왜관읍 관문로 61
- 문의: 010-6791-0071 센터 사무실
- 홈페이지: http://osb.or.kr


박효주 기자 phj@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