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숙 수녀의 중독 치유 일기] (22)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는 길

(가톨릭평화신문)


“우리는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수호자입니다”라는 가톨릭중앙의료원의 윤리는 생명을 다루는 기관의 중요한 핵심 가치이다.

환자가 심정지로 응급상황이 일어나면 병원 전체에 ‘코드 블루’라고 하는 응급코드가 방송돼 긴장감을 갖게 한다. 친분이 있는 한 신부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 본인 집무실에서 바로 일어나 십자성호를 긋고 환자를 위해 짧은 기도를 바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씀에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생각뿐이었다. 그러다가 병원에서 일하면서부터 응급코드가 방송되면 나도 모르게 기도를 하게 되었다.

술을 마시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 응급실로 들어오는 분들의 경우 안타깝고 아픈 사연을 가진 분들이 많다. 알코올의존치료센터를 수도회(성가소비녀회)가 대학병원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계기는 무모하게 죽음을 선택하는 분들을 접하면서다. 선배 수녀들은 “한 명의 중독자는 주변뿐 아니라 가족을 병들게 하고, 가족이 건강하지 않은 사회는 불안하며 더 나아가 건강하지 못한 국가를 만든다”고 늘 강조하셨다. “그렇기에 중독자를 돌보는 일은 곧 가족을 돌보는 일이며 그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곧 우리 수도회의 가족정신이기도 하다.” 그 말씀이 가슴으로 다가올 때가 많아졌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바람에 응급실에 오신 분들은 대부분 삶의 밑바닥에서 답이 보이지 않을 때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물질이나 행위에 중독된 분들도 중독이라는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심리적으로 우울감이나 무기력감 등으로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말을 쉽게 한다. 실제로 상담을 해 보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경험이 있기도 하다.

상담하면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질문하기도 한다. “선생님, 지금 사시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고 하시는데 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요? 아이들과 다른 가족들은 마음 편하게 잘 살 수 있을까요? 죽으면 그다음은 누가 가족을 책임져야 하나요?” 침묵이 흐른 뒤 작은 소리로 답을 하신다. “내가 죽으면 아이들이 가장 힘들겠지요.”

긴 시간 하느님이 왜 우리 각자에게 생명을 주시고 특별히 가족을 주셨는지, 이 고통스러운 길을 어떻게 헤쳐 나아갈지를 함께 나누다 보면 그간의 잘못된 생각과 마음을 바꿔 잘 받아들이시는 분도 있지만, 여전히 절망감과 무기력함, 우울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분들도 계신다.

중독은 하느님께서 바라시지 않는 죽음의 길을 선택하게 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생명을 마음대로 사용하다가 처리하라고 주시지는 않았다. 언젠가 주인이신 그분께 돌려드려야 할 것이 생명이다. 술과 약물을 하고, 게임과 도박으로 휴식을 잃고, 달콤한 유혹을 찾아 어둠을 탐닉하는 수많은 잘못들은 생명을 죽음의 어두운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이제 멈추고 다시 생명의 길로 나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 개인과 가정, 사회와 국가를 건강하게 만들어가고, 하느님께서 진정으로 바라시는 생명의 축복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부천성모병원 알코올의존치료센터 상담 : 032-340-72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