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숙 수녀의 중독 치유 일기] (31)“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루카 10,20)

(가톨릭평화신문)


건강이 좋지 않았던 나의 어머니는 자주 투병생활을 하셨고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자궁경부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은 빈자리는 허전하고 외롭고 슬프기도 했다. 추운 겨울 언덕에 쌓인 눈으로 눈사람을 만들면서 어머니 얼굴을 떠올렸던 기억이 난다. 수녀원에서 30여 년을 살았어도 어머니의 가슴이 늘 그리운 것은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모성애의 결핍 때문임을 자주 알아차리곤 한다.

‘모성애 실조’가 중독이라는 질병의 원인이라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어머니의 역할이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계속 술을 마시면서 몸과 마음이 병들어가고 때로는 가정이 해체되어 모두가 떠나도 끝까지 손을 놓지 않는 유일한 분은 어머니이다.

몇 년 전에 알코올의존센터에서 8주간의 프로그램을 마치고 단주를 유지하다가 최근 재발한 분이 있다. 당시 그분 아버지는 부천성모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었는데, 장남인 자신이 아버지 치료비와 자신의 술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도움을 요청했던 분이었다.

상담하면서 여러 가지로 어려운 가정 형편과 단주 의지를 고려하여 아버지 치료비와 8주 프로그램 비용을 사회사업팀에서 지원받기로 하고 교육을 시작하였다.

교육을 마칠 즈음 아버지는 많은 기도 속에 우리 병원에서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셨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고 맑은 정신으로 아버지를 살펴드리고 행복한 곳으로 편안하게 보내드릴 수 있었다”며 감사의 눈물을 흘렸고, 단주를 열심히 하겠노라고 다짐까지 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그는 알코올센터의 모임과 후속 교육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 무렵 그의 어머니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왔다. “수녀님! 우리 아들이 죽을 것 같아요. 지금 다시 술을 마시고 칼을 들고 며느리와 싸움을 하고…, 며느리는 이혼하겠다고 저에게 문자를 했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상담을 요청해 왔다. 어머니는 상담 내내 자랑스럽고 착한 아들이라고 반복해서 이야기하면서 며느리와 이혼만 하지 않도록 도와 달라고 했다.

80세가 넘은 어머니는 재발하여 방황하는 아들에 대한 사랑과 원망, 며느리에 대한 고마움과 미움으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어머니는 매일 전화를 하고 수시로 알코올센터를 방문했다. 그러나 매번 같은 질문과 답을 해야만 했다. 해결은 어머니가 할 수 없고 반드시 당사자들이 해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알려드렸지만, 어머니는 계속 중간 역할을 하며 아들과 며느리를 조정하고 통제하고 있었다.

결국, 상담에서 치료자로서 결론을 내려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이제 어머니 자식이 아닙니다. 그 아들과 며느리의 삶에서 그만 떠나세요. 자식이 어머니 소유물입니까? 그들이 자신들의 삶을 선택하고 책임지도록 보내주세요.”

한참 말씀을 못 하던 어머니는 눈물을 보였다. 창조 이전에 우리의 이름을 하늘에 기록해 두시고 그분의 계획대로 이끄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믿어야 하는 순간이다. 중독에는 인간적인 어머니의 사랑도 필요하지만, 우리 각자를 초대하신 하느님께 전적으로 맡겨드리고 개별적이고 독립된 존재로 바라보는 모성애가 더 요구되기 때문이다.



부천성모병원 알코올의존치료센터 상담 : 032-340-72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