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현장에서] 상처받은 기억, 치유하는 기억

(가톨릭평화신문)
▲ 강혁준 신부



화재 현장에서 엄마를 찾는 어린아이를 살리지 못한 죄책감. 사고 후 남은 고통스러운 잔상들. 빨간 잉크만 봐도 심장이 뛸 정도로 현장에서 마주쳤던 끔찍한 기억. 이 모든 것을 감내하고 있는 소방공무원들과 대화하다 보면 그들이 일반적으론 접하기 힘든 상황을 매일 겪고 있음을 깨닫는다.

꿈에서 출동 벨 소리를 듣고 놀라 깨기도 하고, 극심한 트라우마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소방 동료들의 기억까지. 이들의 발목을 잡는 아픈 기억들은 많다. 모든 사람에겐 즐겁고 힘든 기억이 있다. 그러나 어떤 충격적인 기억이 정신적 상흔으로 남아 정상 생활을 어렵게 만든다면, 문제다. 흔히 이런 증상을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라고 한다.

소방공무원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정도가 매우 높다. 소방관들 중 순직자보다 자살자가 많다는 통계는 안타까운 현실을 대변한다.

아픔을 신앙의 힘으로 극복할 수는 없을까. 우리 신앙에는 믿음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놀라운 기억이 있다. 바로 성체성사로 기억되고, 현존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기억의 성사’인 성체성사는 주님 사랑과 늘 함께하도록 해주는 축복이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오셨을 때, 그분은 몸의 상처를 그대로 지니셨다. 그분은 제자들의 배신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오히려 마음 불편해 했을 그들을 축복하고 위로해주셨다.

하느님 사랑 앞에선 어떤 상처도 작동하지 못한다. 제자들 안에 배신으로 형성된 기억의 상처가 완전히 사라질 순 없겠지만, 예수님의 큰 사랑으로 치유되고 위로받은 것처럼 말이다.

최근 서울시 공모사업에 소방공무원 사목 계획이 선정돼 7월부터 서울소방학교에서 PTSD 예방교육 프로그램 ‘해피아트테라피’(H.A.T)를 진행하게 됐다. 소방학교 학생들이 내면의 부정적 기억과 상처를 치유하고, 앞으로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해피아트테라피 워크숍을 통해 힘을 얻길 주님께 기도해 본다.



강혁준 신부 / 서울대교구 직장사목팀 소방공무원 사목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