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숙 수녀의 중독 치유 일기] (32)“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가톨릭평화신문)


성경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매번 다르게 느껴지는데 알코올의존치료센터에서 만나는 많은 분 중 중독 문제를 가진 당사자보다 그 가족들을 만날 때 더욱 그렇다. 자식 혹은 남편으로, 아내로 만나 중독 문제로 마음과 몸이 병들대로 병들어 상처투성이가 돼 센터 문을 두드릴 때 그분들을 보고 지나칠 수 없는 사마리아인이 된다.

우리 센터의 재활 프로그램은 낮 동안만 진행되기에 8주간을 낮 병동에 입원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오랫동안 반복되는 폐쇄 병동 입ㆍ퇴원으로 본인과 가족들은 병원비 부담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흔하다.

전화 상담을 하다 보면 대부분 치료비를 먼저 묻는다. “수녀님! 치료비가 얼마예요? 대학병원이라 비싸지 않나요? 제가 능력도 없어서요.” 지속해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가족들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너무 치료비 염려하지 마시고 본인에게 치료 동기만 있다면 상담 후에 어떻게 도와드릴지 결정해도 됩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편안하게 오십시오” 하고 용기를 드려도 머뭇거리며 깊은 한숨과 함께 무겁게 전화기를 내려놓는 모습이 전달되곤 한다.

상담하여 본인에게 치료 동기를 확인하고 어떻게든 술 문제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 전문의 진료 후 입원이 결정되고 입ㆍ퇴원계에 낮 병동 입원을 요청한다.

“선생님, 이분은 알코올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을 분인데 저희가 8주 후 퇴원할 때 정리해 드릴 테니 입원 절차 부탁드립니다” 하면 곧바로 직원들은 비용 처리와 사유를 묻지 않고 조건 없이 아픈 이의 상처를 치료하고 싸매주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곤 한다.

부천에서도 ‘소사동’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오랫동안 성가병원으로 가족적 사랑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기울였던 선배 수녀님들의 사랑을 배우고 경험으로 체득된 직원들에게 가끔 놀라기도 한다.

최근 강원도에 산불이 발생했을 때, 술을 마시고 와서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피워도,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면서 외래 접수를 도와야 하는 보호자 없는 고령의 어르신들이 늘어나도 예수님 마음으로 한결같이 대하고 아낌없이 후원하는 우리 병원 직원들에게서 착한 사마리아인을 만나고 감동하기도 한다.

8주간 프로그램을 마치는 날에는 작지만 멋진 졸업식을 하는데 가족들에게 케이크와 소박한 간식들을 준비하게 한다. 최근 졸업식에 혼자 살며 가난하고 어렵게 생활하시는 분이 계셨다. 그분의 어려움을 알았기에 다른 분들과 차별되지 않도록 조용히 센터에서 간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하지만 졸업을 며칠 앞두고 “수녀님! 제가 큰 수박 사 올게요” 하면서 매우 흥분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와! 이번 졸업에는 수박에다 촛불을 켜고 축하식을 해야 하겠네요” 하자 “아니요. 제가 케이크와 큰 수박 사 올 거여요. 저도 많이 받았는데 갚아야지요. 제가 미리 돈을 모아두었어요” 하시는 게 아닌가.

비록 가난하고 가진 것이 많지 않지만, 이웃을 향한 케이크와 수박의 나눔으로 또 다른 착한 사마리아인이 탄생하고 있으니 참으로 고귀하고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부천성모병원 알코올의존치료센터 상담 : 032-340-72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