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15주일 - 하느님의 ‘가엾은 마음’

(가톨릭평화신문)
▲ 한민택 신부



오늘 복음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가엾은 마음’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그 어원을 따져 보면 ‘어머니 태속이 쓰린 아픔’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되어 쓰러져 있었을 때, 사제와 레위인이 그를 보고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린 반면, 사마리아인은 그를 보고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강도 만나 죽어가는 사람의 비참한 처지를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사랑에서 비롯된 쓰린 감정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가끔 등장하는 이 표현은(마태 18,23-35; 루카 15,11-32 참조) 예수님 자신에게도 적용됩니다.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애원하자 가엾은 마음이 든 예수님은 그에게 손을 대시어 병을 고쳐주십니다.(마르 1,40-45 참조) 예수님은 군중을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는데,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입니다.(마태 9,36 참조) 외아들을 잃고 장례를 치르는 과부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드신 예수님은 그에게 “울지 마라” 하시며 위로해주시고 아이를 살리십니다.(루카 7,11-17 참조)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님의 마음을 아울러 표현하는 ‘가엾은 마음’은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물음에 이렇게 답합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비천함을 나 몰라라 하지 않고 굽어보시어 인간에게 몸소 다가와 구원해주는 분이시다.’ 자비로운 하느님에 대한 교회 공동체의 체험은 ‘마리아의 노래’를 통해 아름답게 표현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6-49)

오늘 복음에서 어떤 율법 교사가 예수님에게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그에게 답하시는데, 비유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자면 그 말씀은 ‘누가 나의 이웃인가?’보다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답임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삶을 통해 보여주신 하느님, 우리가 직접 만나고 그 자비와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신 하느님은,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우리에게 ‘이웃’이 되어 주는 분이십니다. 강도를 만나 상처 입고 초주검이 된 사람은 비천한 인생을 사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런 우리를 하느님께서는 저 먼 하늘 위에서 멍하니 내려다보거나 내버려두지 않고, ‘가엾은 마음’으로 몸소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와 함께 그 상처를 나누고자 하시며, 우리의 병고와 질병을 대신 짊어지고자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비천한 삶을 굽어보시고 우리를 찾아오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아보라고 하십니다. 예, 하느님은 이미 우리를 방문하셨습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주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났고 그분의 사랑을 받으며 자녀로서 누리는 자유와 기쁨 속에 살아갑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당신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신 것처럼, 우리도 불쌍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라고 하십니다. 우리를 통해 주님은 오늘도 당신의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 이성과신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