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숙 수녀의 중독 치유 일기] (33)“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루카 10,41)

(가톨릭평화신문)


성경에서 마리아와 마르타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자주 마르타의 편을 들었다. 마리아처럼 예수님 발치에서 말씀만 듣고 있다고 생각하면 바쁘게 일하는 나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나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할머니께서 집안 살림을 맡아 하셔서 살림을 도와드려야 했다. 주변을 살피는 게 습관이 되어 스스로 몸을 고달프게 하고 피곤하게 만들었다. 수도원에서 수도생활을 하고 다양한 소임을 통해 ‘남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거절당하면?’ 이러한 두려움들이 나를 돌보지 못하고 주변을 살피는 데 급급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독에서 회복으로 가는 치료 과정에 있어 극복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억울함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몇 해 전 단주를 잘하시다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한 분이 생각난다. 그분은 가난이 싫고 고통스러워 잘 살고 싶어 했다. 그분은 그래서 아내와 죽도록 일을 해서 경제적 어려움도 없고 자녀들도 모두 출가시켰다. 그분은 하지만 술로 인하여 건강이 나빠져 알코올 치료를 받고 싶다고 아내와 함께 상담을 오셨다.

부부는 표정이 어둡지 않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느껴질 만큼 밝고 예쁘셨다. 겉보기에 그렇게 따뜻한 마음과 여유 있는 모습으로 잘 지내시던 그분은 조금씩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억울하다”는 표현을 자주 하셨다. “나는 억울한 사람이다. 나는 죽어도 마땅하다.” “수녀님, 전 겨울이 싫어요. 눈이 오면 우울해져요. 강원도 깊은 산골에 눈이 내리던 날!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투시고 어머니가 어린 나를 뒷산으로 끌고 가 눈 속에 머리를 박으면서 ‘죽자, 너도 죽고 나도 죽자!’ 하셨던 기억들이 있어요.”

그분은 어린 시절 홀로 된 어머니께서 새 아버지를 만나 가정을 꾸리면서 새 아버지로부터 심하게 모욕과 차별을 당했다고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억울함이 치밀어올라 술을 마시지 않고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했다. 그분은 초등학교 졸업하고 집을 나와 수많은 일을 했다. 자신의 몸보다 큰 아이스크림 통을 메고 온 동네를 다니며 아이스크림을 팔았고, 작은 부품공장에서 밤낮으로 일하면서 살았다. 과거 세월을 생각하면 억울함이 자주 올라와 술로 달랬고 결국 중독이 되었다.

그분은 현재 풍족하게 살고 있어도 과거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이 풀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분의 눈물과 상처들이 조금씩 선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억울함을 내려놓는 회복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단주하면서 가슴속 응어리들을 조금씩 풀어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건강이 나빠져 투병생활을 하셨다.

세상을 떠나시기 전 그분이 힘겹게 전화하셨다. “수녀님! 어머니가 보고 싶네요. 우리 어머니 어디 계신지? 어머니가 보이지 않네요.” 계속 반복해서 어머니를 부르셨다. 그리고 다음날 고요하게 세상을 떠나셨다.

문득 고통도 슬픔도 억울함도 없는 곳, 하느님 나라로 떠나신 선생님의 환한 모습이 그리워진다. 하느님 곁에서 즐겁게 지내실 우리 선생님께 응원의 한마디를 드리고 싶다. “좋은 몫을 선택하신 선생님! 지금은 억울하지 않으시죠? 멋지고 행복한 나날 보내세요.”



부천성모병원 알코올의존치료센터 상담 : 032-340-72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