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16주일 - 가장 필요한 단 한 가지

(가톨릭평화신문)
▲ 한민택 신부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1-32)를 읽고 큰아들의 편을 드는 것처럼,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마리아보다는 마르타 편을 드는 사람을 종종 만납니다. 마르타의 심정이 이해가 가고, 마리아의 태도가 오히려 못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그 의견에 수긍할 수는 있지만, 그러한 입장이 왠지 불편한 것도 사실입니다. 복음은 언제나 우리의 구미나 취향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향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다음의 물음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단 한 가지를 찾았는가?’ 마르타는 예수님 일행을 잘 대접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마르타는 그 일을 하면서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자기 일을 돕지 않고 예수님의 발치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 동생 마리아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르타의 그런 마음을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마르타가 참다못해 예수님께 다가가 분통을 터뜨렸을 때, 예수님은 평화로운 어조로 마르타에게 이르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이 말씀을 잘 알아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르타의 일이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마르타의 시중드는 일은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하고 값진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다만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라고 이르시며, 마르타가 가장 필요한 바로 그것을 찾고 있는지 일깨워주고자 하십니다. 마르타의 문제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한 것이 아니라, 그 일 자체에 마음이 빼앗겨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에서 마음이 멀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필요한 한 가지’, 그리고 마리아가 선택한 ‘좋은 몫’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지금 내 앞에 있는,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 안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선포에서 중요한 것은 허공을 향해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만나는 사람 안에서 그 나라 곧 ‘하느님의 다스리심’이 실현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사람에게 관심을 두셨습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놀라운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과 공을 들여 만나셨으며, 그들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만나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전해주시며, 그들의 삶을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평화와 구원이 다스리도록 이끌어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의 두 자매 이야기는 우리에게, 특별히 교회에서 봉사하는 봉사자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곧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잃을 때, 사람과 만나 나누는 사랑의 친교를 잃을 때, 우리가 하는 일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우리의 봉사는 빈껍데기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과 만나며, 그들과 얼마나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가요? 혹시 내가 하려는 일, 나의 뜻과 계획을 앞세운 나머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족과 이웃의 마음을 저버리지는 않았는가요? 우리가 만나는 이들 안에 주님께서 친히 당신 나라를 실현시키실 수 있도록, 가던 길을 멈추고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 이성과신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