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77)책임져야 할 얼굴

(가톨릭평화신문)
▲ 나이를 먹으면 반드시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 반복되는 생각과 감정과 행동이 고스란히 시간과 함께 얼굴로 모여들기 때문이다. CNS 자료사진




잠깐 고향에 머물던 차에 오래간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세월은 흘렀어도 하는 손짓이나 표정은 여전했다.

“아, 너 그대로네.”

“너도 그래.”

“정말?”

아주 잠깐 사이 타임머신을 타고 발랄했던 학창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런데 정말 이 나이가 되고 보니 공부 잘했고 똑똑했고 예뻤고… 다 소용없더라고.”

“돈이 많아도 불행하게 보이는 친구도 많아.”

“그래 맞아. 이제는 얼굴만 봐도 어떻게 살았는지 알 거 같아.”

“그러니까 가장 빛이 나는 사람은 뭐니뭐니해도 긍정적으로 인생을 즐기며 사는 친구더라고.”

그 순간 작년에 우연히 만났던 친구가 떠올랐다. 그는 학창시절 정말 예뻤다. 바라보기만 해도 은근 질투가 날 정도로 밝고 빛났다. 그런데 어쩌다 마주친 그 친구, 믿기 어려울 정도로 얼굴은 일그러져있었고 실제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 보였다. 얼굴 곳곳에 ‘화’가 돌처럼 뭉쳐있는 거 같았고 무언가 쫓기듯 불안한 눈빛으로 다가왔던 그 친구. ‘아, 이 친구가 행복하지 않구나. 정말 많이 힘들구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인지 나는 힘주어 말했다. “그래, 맞아. 나이가 들면 내 얼굴은 내가 책임진다잖아.”

그러자 한 친구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정말 죽을 만큼 힘들게 살았어. 그때는 아무런 희망도 없고 죽었으면 딱 좋겠더라고. 그러다가 어느 날 거울을 보았지. 그런데 깜짝 놀랐어. 그 거울에 괴물이 떡하니 들어앉아 있었어. 괴물이…. 너무 놀랐어. 그리고 나는 생각했어. ‘내가 이렇게 살다가는 큰일 나겠구나. 이렇게 살면 안 되는구나’ 하고.”

친구의 고백은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기쁘게 잘 살자며 헤어지려 하는데 내 동생과 언니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들은 내 가족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또 한참을 그렇게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돌아서 집으로 오는데 동생이 말했다. “언니 옆에 있던 그 친구, 고생 안 한 얼굴이야.” 그러자 언니도 “그래, 잘 웃고 아주 밝아 보였어”라고 했다.

아! 말할 수 없는 숱한 고생을 하면서 죽었으면 딱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해왔던 친구. 거울 안에 갇힌 우울과 스트레스를 먹는 괴물을 물리치려고 신앙의 힘으로 버텨왔던 친구. 그 친구에게 전화해서 말해주어야겠다. “성공했어. 이제 다시 거울을 봐. 이제 진짜 네가 보일 거야.”

가끔 나도 거울을 본다. 나이가 들면서 늘어나는 흰머리, 잡티, 기미, 주름을 본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비추어지는 외모에 갇히면 진짜 내가 바라봐야 할 내 모습을 못 본다. 친구는 죽고 싶을 때 거울을 보았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에도 거울 속의 자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괴물같이 변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직면했고 또 인정했다. 그리고 그는 성찰했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나이 먹으면 반드시 책임져야 할 내 얼굴, 이 얼굴에 내가 평생 살아온 습관이 배어 있다. 반복되는 생각과 감정과 행동이 고스란히 시간과 함께 얼굴로 모여든다. 인생의 발자국이 얼굴 곳곳에 남겨진다. 만인에게 공개되는 내 인생의 퍼즐, 얼굴이다.





성찰하기

1. 거울을 보세요. 남들에게 보이는 외모가 아닌 내가 보는 내면의 얼굴을 봐요.

2. 신체적으로 늙어가는 외모를 멈추게 할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밝고 유쾌한 미소로 정신적 젊음을 유지할 수는 있겠지요.

3. 우울과 스트레스는 건강을 훔치는 도둑입니다. 아주 소소한 것에서부터 감탄하고 작은 것에 감사하는 연습을 하면서 긍정의 세포를 깨워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