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현장에서] 순교자를 닮은 순례자

(가톨릭평화신문)
▲ 김성태 신부



아직은 맨살에 닿는 볕이 따갑다. 차창 안으로 밀려든 햇빛이 성가셔서 차양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피하던 참이었다. 갓길도 없이 굽어가는 시골 길에 무리 하나가 열을 지어 걸어간다. 틀림없이 오전에 성지에서 미사를 드린 수녀님들일 것이다. 오늘 처음 만났는데도 무심히 지나쳐지지가 않는다. 종종거리며 내딛는 발걸음이 기도이고, 봉헌이다. 속도를 줄여 축복하는 마음으로 저들의 순례에 나의 기도를 보태고 싶었다.

눌러 쓴 모자가 크기는 해도, 바람에 창이 자꾸 뒤집히는 통에 얼굴은 이미 벌겋게 달아 있었다. 무리보다 조금 뒤처진 수녀님이 힘겨워 보이길래, 주춤 세운 차창 밖으로 소리를 쳤다. “타실 튜~?” “…” 수녀님은 미소로 점잖게 사양을 했다. 사실, 말수 적은 충청도 신부가 큰 맘 먹고 제안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나의 배려를 거절한 수녀님이 밉지가 않다. 지친 다리를 이끌어서라도 귀한 땅을 자기 발로 남김없이 디뎌 가려는 그의 마음이 읽힌 까닭이다. 멋쩍은 채로 다시 차를 몰아, 가던 길을 이어갔다. 차 속 거울로 뒤를 힐금 돌아다보니, 하얀 베일을 파란 하늘이 온통 감싸고 있다.

순례자는 늘 그런 식이다. 나와 같은 평범한 교우가 분명한데 순교자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걸으려 한다. 어제 혼자서 순례 온 교우도 그랬고, ‘링링’이라는 이름의 거친 바람 속에 이 길을 걸었던 이들도 꼭 그랬다.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고 흉내 내다보면, 이렇게 순교자의 자취를 따르노라면 시나브로 순교자를 닮게 되는가 보다.

태풍이 전에 없이 모질었다는데 사람이 크게 상하지 않았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때아닌 장마까지 길었던 탓에 가을이 선사하는 깊은 하늘을 만끽할 여지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즈음 하늘은 여느 가을보다 더 푸르러 보인다. 오늘은 바람마저 선선한 게 순교자를 닮은 순례자가 되기에 딱 좋은 날이다.



김성태(대전교구 솔뫼성지 전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