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복음] 연중 제31주일-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는 주님

(가톨릭평화신문)
▲ 정순택 주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1월, 위령 성월이 되면 누구나 한 해의 마지막이 멀지 않았음을 느끼게 됩니다. 한 해의 마지막이 있듯이 우리네 삶에도 마지막이 있음을 묵상하게 되고, 먼저 가신 가족, 친지, 은인들의 안식을 기도하게 되는 계절입니다.

오늘 11월의 첫 주일에 맞는 연중 제31주일 복음은 루카 복음에만 나오는 예수님과 자캐오라는 세관장의 만남 이야기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님의 여정 마지막 단계에서 예루살렘 입성 직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 시점의 사건은, 장차 예루살렘에서 붙잡히시고 수난받으실 예수님이 진정 어떤 분이신지가 드러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자캐오는 세관장이요 부자라고 루카 복음사가는 말합니다. 사실 세관장이라는 직책은 예수님 당시 유다인들에게는 ‘로마 제국의 하수인’ 정도로 여겨져서 배척받는 자리였습니다. 종종 거두어들여야 하는 세금 이상으로 거두어들여 자신의 배를 채우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 자캐오가 예수님이 예리코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그분을 보고 싶어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키 작은 세관장이었던 자캐오에게 단지 작은 키만 문제였다면, 이웃 사람들과 어울려 그들 앞줄에 비집고 들어가서 예수님을 기다릴 수도 있었을 터이지만, 많은 사람 속에 어울리지 못하고 따로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간 모습이 자캐오의 외로운 처지를 말해 줍니다. 그리고 제국의 하수인이자 부정직한 세리이고 외로운 처지이기에 더더욱 예수님을 간절히 찾는 갈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군중의 환호 속에서도 외로운 한 존재의 갈망을 놓치지 않으십니다. 군중에서 떨어져서 나무 위에 외롭게 올라있는 애타는 눈망울을 보시고 그를 부르십니다. “자캐오야, 내려오너라!” 예리코의 한 세관장 이름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미리 아셨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점은, 예수님께서 ‘어~이, 거기, 나무 위의 사람, 한 번 내려와 보시게’ 정도가 아니라, 이름을 불러 주셨다는 점입니다. 이는 자캐오 같은 죄인이요 외로움에 떨고 있는 이를 ‘있는 그대로, 한 인격으로 사랑하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오늘 1독서에서 지혜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님, 온 세상도 당신 앞에서는 천칭의 조그마한 추와 같고, 이른 아침 땅에 떨어지는 이슬방울 같습니다. … 당신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한 해라고 하는 시간의 선물을 받았지만, 돌아보면 풍성한 수확을 거두지 못했다고 ‘빈손’을 느끼는 우리 죄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캐오야, 오만과 외로움의 나무에서 내려오너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만나며, 우리도 이웃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겠다’는 결심을 바쳐드립시다.





정순택 주교(서울대교구 보좌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