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24)성경 독서와 들음

(가톨릭평화신문)
▲ 허성준 신부



초기 수도승 작품들을 보면 독서(lectio)와 들음(auditio)이라는 두 용어는 자주 동의어로 사용되곤 했다. 성경 독서가 말씀을 읽으면서 동시에 귀 기울여 그 말씀을 듣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도승들의 독서는 단순히 읽는 수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귀 기울여 듣는 수행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들에게 성경 독서의 시간은 들음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잘 듣는다는 것! 이것은 영성 생활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잘 듣지 않으면 제대로 말할 수 없기에 잘 듣는 수행이 필요하다. 그래서 수도 전통에서는 언제나 잘 들어야 함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성 베네딕도는 수도 생활에서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수행의 중요성을 자주 강조하였다. 그래서 「베네딕도 규칙」 서두는 “들어라, 오 아들아!”(Obsculta, O Fili)로 시작한다. 또한 그는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빛을 향해 눈을 뜨고 하느님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외치며 훈계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베네딕도 규칙」 전체에서 드러나는 침묵과 고요 그리고 잠심의 분위기는 이러한 하느님의 말씀에 철저히 귀 기울이기 위한 것이었다.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는다는 것은 수도승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였다.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을 때 지혜는 시작되며 바로 이때 마음과 정신은 개방되고 어린이 같은 순수한 마음과 수용력을 갖게 된다. 아르스의 체사리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느님 말씀에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은 마치 우리가 성체를 소홀히 하여 바닥에 떨어뜨리는 것과 같다고 지적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인 신ㆍ구약 성경은 끊임없이 들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신명기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강하게 호소하고 있다.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신명 6,4)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라는 명령이다. 또한 시편 저자 역시 “이스라엘아 정녕 나의 말을 들어라”(시편 81,8)라고 말하고 있다. 구약의 수많은 예언자들은 한결같이 이러한 들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즉 하느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서 잘 듣고 그분께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신약 성경의 마지막 부분인 묵시록에서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강조하고 있다.(묵시 2,7; 13,9)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바로 그 순간 하느님의 말씀은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Hic et Nunc) 새롭게 다시 선포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에서 새롭게 선포되고 있는 그 말씀에 온 마음과 온 정신으로 귀 기울일 때, 비로소 그 말씀은 내 안에서 새롭게 울려 퍼지고 참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된다. 이에 프랑스의 트라피스트회 앙드레 루프 아빠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성경 독서 시간에 친히 각 사람에게 말을 건네시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읽는 이는 온 힘을 다해서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수도자들은 매일 규칙적으로 성경독서 시간에 깨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였기에 하느님 말씀의 심오한 신비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할 수 있었고, 또한 실제적으로 수도생활에서 말씀을 따라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므로 성경 독서 시간에 성경을 읽으면서 동시에 귀 기울이는 수행은 매우 중요하다.



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