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14)첫영성체 교리 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하)

(가톨릭평화신문)


어린 시절 영성 발달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종교 교육과 신앙 교육이 하나의 중요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데레사씨처럼 아이들에게 특정 종교나 신앙을 가르치지 않고 싶다면 자신이 다른 방식으로 나름의 영성 교육을 해야 한다. 이론적으로 영성 발달은 반드시 종교나 신앙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종교와 신앙을 배제한 채 영성적 감수성을 발달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다. 현대인들은 근대주의, 과학주의, 세속주의, 기계주의, 환원주의 그리고 유물론적 세계관과 자본주의의 병폐인 물질만능주의로부터 무의식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종교와 신앙을 배제하고 영성 발달을 추구한다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신성하고 초월적인 존재(혹은 하느님)에 대한 감수성,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에 대한 존엄성, 인간과 자연의 상호연관성, 사랑과 연민, 인생의 의미와 가치, 윤리도덕과 덕행, 참된 자아실현 등은 영성 성장과 발달 시기에 놓여 있는 아이들이 접해야 할 중요한 주제이다. 피아제의 발달 이론에서 말하는 형식적 조작기에 접어든 11세 이후의 아이들은 적어도 이러한 추상적인 주제들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체험하며 내면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이때 아이들의 뇌 안에는 영성 발달을 이루기 위해 그때까지 경험했던 모든 정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영성 감수성을 확립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종교와 신앙은 모호하고 추상적인 영성을 실제적인 삶의 과정 안에서 체험하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일 누구를 존경하고 있다면 그것은 표현되기 이전까지 잠재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인식된다. 하지만 추상적 감정이 ‘인사’라는 구체적인 형식으로 표현될 때에 비로소 우리의 뇌는 그 감정을 실재적인 정보로 해석하고 기억한다. 자신으로부터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그 사랑의 진실성 여부와 상관없이 뇌에서는 실재적인 정보로 해석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의 뇌는 추상적 개념을 실재적 정보로 해석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각적인 자극을 필요로 한다.

아이들의 영성적 감수성 역시 영성과 관련된 추상적 개념들이 구체적인 삶의 방식 안에서 표현되고 체험할 기회를 허용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은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영성을 통해 성장하고 발달하는 체험을 통해 자신의 영성적 정체성을 확립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종교 체험과 신앙 교육은 추상적인 영성 개념들을 구체적인 방식으로 경험하도록 도와준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초자연적인 은총을 보이는 인간적 방식으로 체험하게 해주는 중요하고 구체적인 방법이 된다는 것이다.

만일 아이들의 영성 발달을 촉진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안이 있다면, 데레사씨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굳이 첫영성체 교리를 시키지 않아도 될 것이다. 세상이 존재하는 방식과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 인간이 살아가야 할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감수성, 그리고 신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방식을 종교와 신앙의 틀을 사용하지 않고 전해줄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실 데레사씨가 아이들에게 종교 자유를 주겠다면서 신앙 교육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가지게 된 것은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 자신이 받은 교리 교육이 자신의 삶과 연관이 없는 추상적이고 피상적인 교육이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느님에 대해서는 배웠어도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체험을 하지 못했기에 형식적인 교리 교육을 거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성체는 예수님의 몸이라는 교리 지식이 아니라 영성체를 통해 예수님과 일치하는 체험이 있었다면 데레사씨는 아이들에게 다른 입장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데레사씨의 부모 역시 어린 시절 데레사씨에게 성당의 교리 교육과 더불어 영성 양육에 좀 더 신경을 기울였다면 지금 같은 상황을 미리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느님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고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도록 돌보는 부모는 자녀로부터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향한 자유를 선물하는 것이다. 자녀들에게 물질적 재산과 영성 자산 중 어떤 것을 물려주는 것이 과연 자식을 위한 진정한 사랑일까?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