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먹듯 성경을 천천히 씹고 음미해야

(가톨릭평화신문)
▲ 허성준 신부



수도자들은 성경을 끊임없이 읽고, 듣고, 기억하며, 그것을 반복적으로 되풀이하고, 되씹음으로써 말씀으로부터 영적 자양분을 얻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가장 잘 묘사한 단어가 바로 “ruminatio”(루미나시오, 되새김, 반추)이다. 이것은 마치 소나 낙타가 음식을 저장하였다가 그것을 살과 뼈에 스며들 때까지 천천히 되새김하는 것과 같다. 즉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 본문을 되씹음으로써 그것을 맛보고 또한 그 본문의 깊고 충만한 의미를 깨닫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특히 이러한 되새김은 수도 전통 안에서 상당히 중요한 수행 중 하나였다.

사막의 교부였던 마카리우스 압바는 우리 모두가 되새김하는 양과 같이 음식을 계속 되씹음으로써, 그 음식의 달콤한 맛을 보게 되고 마침내 마음 가장 깊은 곳으로 그 음식을 집어넣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파코미우스 성인은 각자의 소임지에서나 혹은 혼자 있을 때나 언제나 성경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 안에서 계속 반복되기를 바랐다. 파코미우스와 그의 형제들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모두 거룩한 성경 말씀을 되뇌는 수행을 멈추지 않았다. 파코미우스 성인의 제자였던 호르시에시오스의 규정집에 보면, 수도원 어디에서든지 성경 말씀을 암송하는 수행이 멈추어서는 안 됨을 강조하고 있다.

라틴어 성경인 「불가타」를 우리에게 전해준 히에로니무스 성인 역시 끊임없는 독서와 반복적인 묵상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서고(書庫)로 만들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요한 가시아누스는 끊임없는 묵상이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우리를 형성할 때까지 스스로 열심히, 보다 더 끊임없이 렉시오 디비나 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또한, 수도자는 일하면서 동시에 성경 본문을 끊임없이 묵상해야 함을 강하게 권고하였다.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묵상은 말할 것도 없이 되새김 수행을 의미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독서를 하루 동안 연장되는 되새김과 관련하여 언급하였다. 그는 마태오 복음 4장 4절을 주석하면서, 사람이 매일 빵을 먹듯이 낮 동안뿐만 아니라 밤에도 우리는 복음을 먹어야 함을 강조했다. 말씀을 듣거나 읽는 것은 음식을 먹는 것과 같고,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는 것은 되새김과 같기 때문이다. 그는 수도자들이 일하는 중에도 시편을 낭송하고 되새김을 계속 해야 한다고 권고하면서, 현명한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계속 되씹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 후 체사리우스는 「수녀들을 위한 규칙서」에서 식당이나 일터에서 공동 독서가 끝나더라도 수도자의 마음에서는 되새김이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베네딕도 성인 역시 이러한 되새김의 중요성을 인식했지만, 그는 노동 중에 행하는 되새김에 대해서는 규칙서에서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것은 일하면서 계속 성구를 되뇌던 「베네딕도 규칙서」 이전의 모습과는 큰 차이점 중의 하나이다. 드 보궤 신부는 베네딕도회 수도생활의 핵심적 표현인 “Ora et Labora”(기도하고 일하라)라는 표현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더 분명하게 ‘Ora et Labora et Lege et Meditare’(기도하고 일하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필자는 이러한 그의 주장에 크게 공감하고 있다. 수도생활이나 영성생활에서 성경은 핵심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일하고 그리고 성경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는 것’은 우리의 수도생활이든 영성생활을 안전하게 떠받치는 4개의 중요한 기둥과도 같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