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23) 판단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12월 초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된 30대 청년 2명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따듯한 위로와 배려를 했던 박○○ 부장판사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재판장인 울산지방법원 박 판사는 “스스로 생을 포기하려고 했던 깊은 고뇌와 참담한 심정을 우리가 어찌 다 이해할 수 있겠느냐”며 “지금보다 더 좋은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니 살아달라”고 호소했다. 박 판사는 “우주가 도서관이라면 우리는 모두 한 권의 책”이라고 비유하면서 “한번 시작된 이야기가 도중에 허망하게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이들이 써 나갈 다음 이야기를 우리 모두가 궁금해한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동반 자살을 시도한 두 청년은 자살방조죄로 각각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들을 마음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려 했던 박 판사의 배려가 두 청년으로 하여금 다시 세상을 살아갈 힘과 용기를 선사했을 것이다. 재판부는 자살방조에 대한 죄 자체를 판단할 뿐이지 그 상황까지 이르게 된 두 청년의 삶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 생을 포기하려는 깊은 고뇌와 참담한 심정을 우리가 어찌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라는 판결문을 통해 이들 삶의 배경과 상황을 깊이 공감하려는 박 판사의 노력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이 순간 두 청년은 자신들의 죄에 대해 판단을 받는 엄중한 상황에서도 인간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분명 체험했을 것이다.
일차적으로 우리는 남을 판단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상황과 배경을 모두 고려한 온전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유한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치 못한 상황에서 누구를 판단해야 할 상황이라면,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해야 한다. 최대한 상황과 배경을 고려하면서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판단을 내리려는 우리의 노력은 비록 판단의 잘못을 저지르는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체험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판단을 한다. 우리의 판단은 결국 타인에게 상처를 줄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도 고통을 안겨준다. 하지만 타인의 행동이나 어떤 현상 이면에 숨어 있는 배경과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려는 노력만으로도 우리는 판단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적어도 그 배경과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왜냐하면, 상황과 배경을 고려하는 가운데 우리는 무엇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無知의 知)은 판단으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죄악과 해악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준다.
우리의 판단이 잘못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우리는 습관적으로 그리고 너무나 익숙한 방식으로 판단을 내리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자신이 내린 판단을 스스로 너무나 쉽게 믿으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확증적 편향). 따라서 판단하는 죄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판단에 앞서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혹은 “적어도 내가 모르는 그 무엇이 있다” 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래야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루카 6,37)라는 예수님 말씀의 참뜻을 이해하게 되고 그 결과 이 덕을 기쁘게 실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