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사살수는 백남기 농민의 생명·기본권 침해’ 판결
(가톨릭평화신문)
헌법재판소는 4월 23일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2015년 11월 고 백남기(임마누엘) 농민에 대한 경찰의 직사살수 행위가 백씨의 생명권 및 집회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백씨의 유족이 “직사살수와 그 근거 규정이 생명권 등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낸 지 4년 4개월 만의 판결이다.
고 백남기씨는 2015년 11월 14일 민중 총궐기 집회에 참가했다가 서울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에서 경찰관들의 직사살수로 약 10개월 동안 의식불명 상태로 치료받다가 이듬해 9월 25일 사망했다. 당시 경찰은 백씨의 머리를 향해 물대포를 직사했고, 넘어진 백씨를 구조하러 접근하는 사람들에게도 20초가량 계속 물대포를 발사했다.
헌재는 “직사살수 행위는 불법 집회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타인 또는 경찰관의 생명ㆍ신체의 위해와 재산ㆍ공공시설의 위험을 억제하기 위해 정당하지만, 백남기씨는 살수를 피해 뒤로 물러난 시위대와 떨어져 홀로 경찰 기동버스에 매여 있는 밧줄을 잡아당기고 있었다”며 “이 사건 직사살수 행위 당시 억제할 필요성이 있는 위험 자체가 발생하였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수단의 적합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부득이 직사살수를 하는 경우에도, 구체적인 현장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아 거리, 수압 및 물줄기 방향 등을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내로 조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경찰은 당시 현장 상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살수차를 배치한 후 단순히 시위를 향해 살수토록 지시했다”며 “당시 직사살수 행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공익은 거의 없거나 미약했던 반면 백씨는 이로 인해 숨졌으므로 법익의 균형성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시했다.
백남기기념사업회 정현찬 회장은 “늦은 감이 있지만 안전하게 집회할 권리와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인정하는 판결이 나와 다행”이라며 “백남기 농민이 평소에 가지고 있던 평화와 평등, 같이 함께 잘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정신을 잘 이어 나갈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전남 보성 출신인 백남기 농민은 1968년 중앙대 행정학과에 입학해 민주화 운동을 하다 제적됐다. 한때 수도원에 입회해 수도자의 길을 걷기도 했으며 이후 한국가톨릭농민회 부회장을 지내는 등 농민 운동가로 활동해 왔다.
직사살수 사건 이후 가톨릭농민회와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남녀수도회장상연합회 등은 시국 미사를 봉헌하며 백남기 농민의 아픔을 함께해 왔다. 백씨의 장례 미사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 등이 공동 집전하며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기도했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