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69) 에필로그<4>- 사도행전에 비춰본 바오로의 생애와 서간③

(가톨릭평화신문)
▲ 바오로의 2차 선교 여행 경로. 출처=「성경 역사 지도」(분도출판사)



예루살렘 사도 회의의 결정을 가지고 안티오키아로 돌아와 지내던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두 번째 선교 여행을 떠나기로 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첫 번째 선교 여행 때와 달리 서로 갈라져서 여행을 떠납니다. 바오로가 신약성경 바오로 서간으로 전해지는 편지들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이 두 번째 선교 여행 때부터입니다.





바오로의 2차 선교 여행

「주석 성경」 ‘연대표’에 따르면, 바오로의 2차 선교 여행은 50~52년까지 약 3년 동안에 이뤄집니다. 바르나바가 마르코를 데리고 키프로스로 떠나자 바오로는 실라스를 데리고 “시리아와 킬리키아를 두루 다니며 그곳 교회들을 굳건하게” 만듭니다.(15,40-41) 이 지역들은 바오로가 회심 후 처음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복음을 선포하다가 유다인들의 박해를 피해 고향 타르수스로 돌아갈 때 거쳐 가면서 선교 활동을 했던 지역이기도 합니다.(갈라 1,21 참조)

이렇게 내륙을 거쳐 올라간 바오로는 데르베를 거쳐 리스트라에 당도합니다. 이 고을들은 바오로가 1차 선교 여행 때에 선교한 곳들이었습니다. 리스트라에서 티모테오를 제자로 삼은 바오로는 계속해서 1차 선교 여행 때 방문했던 도시들인 이코니온과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를 거쳐 서쪽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서쪽으로 계속 간다면 에페소가 주도(州都)인 아시아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아 바오로 일행은 북쪽으로 올라가 갈라티아 북부 지방(오늘날 터키 수도 앙카라 부근)까지 갔다가 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프리기아를 관통해 계속 나아갑니다. 아시아 속주의 북쪽에 있는 미시아 지방에 이르러서는 북쪽 비티니아로 가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예수님의 영께서 허락하지 않아 미시아를 가로질러 에게 해 연안 도시인 트로아스로 내려옵니다.(16,1-8)

트로아스에서 지내던 어느 날 밤 바오로는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달라는 환시를 보고는 트로아스를 떠나 사모트라케 섬을 거쳐 유럽 본토인 마케도니아의 네아폴리스에 도착해 그곳에서 10여㎞ 떨어진 필리피로 갑니다. 바오로는 이곳에서 티아티라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인 리디아에게 세례를 주는 등 선교 활동을 펼치다가 감옥살이를 하고 감옥을 지키던 간수와 그 가족을 개종시킨 후 필리피 행정관들의 요청으로 필리피를 떠납니다.(16,11-40) 필리피는 바오로가 유럽 대륙에서 처음으로 교회를 세운 곳입니다. 또 필리피 교회는 이후 바오로의 선교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적극 후원합니다.

필리피를 떠난 바오로는 암피폴리스와 아폴로니아를 거쳐 마케도니아 최대의 항구도시이며 마케도니아 주도(州都)인 테살로니카에 머무르면서 선교 활동을 계속합니다. 하지만 테살로니카의 유다인들에게 거센 반발을 사고 위험에 처하자 그곳을 떠나 베로이아로 갑니다. 테살로니카의 유다인들이 베로이아까지 쫓아와 군중을 선동해 자극하는 바람에 바오로는 그동안 함께했던 실라스와 티모테오를 남겨 두고 먼저 아테네로 옵니다.(17,1-15)

아테네에서 실라스와 티모테오를 기다리면서 바오로는 유다인 회당에서, 또 광장에서 토론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나중에는 아레오파고스에서 아테네 시민들을 대상을 열띤 선교를 합니다. 하지만 바오로는 아테네에서 선교 활동의 별다른 결실을 보지 못합니다. 실라스와 티모테오와 내려온 후 바오로는 티모테오를 테살로니카 교회로 보내고(1테살 3,1-5 참조) 자신은 실라스와 코린토로 건너갑니다.



테살로니카 교회에 보낸 애정과 권고

코린토에서 바오로는 폰투스 출신으로 천막 만드는 일을 생업으로 하는 유다계 그리스도 신자들인 아퀼라와 프리스킬라 부부를 만납니다. 생업이 같아서 바오로는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안식일이면 회당에서 토론하며 유다인들과 그리스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던 차에 마케도니아에 갔던 티모테오가 코린토로 내려와 바오로에게 테살로니카 교회에 관한 소식을 전합니다. 테살로니카 신자들이 바오로를 그리워하며 바오로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교회에 편지를 써 보내는데 이 편지가 바로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입니다. 신약성경 27권 가운데서 바오로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서간 가운데 바오로의 친서가 몇 권이 되는지에 대해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립니다만, 적어도 7권은 바오로가 직접 쓴 편지라는 데는 견해가 일치합니다.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은 그 가운데서 첫 번째 편지로 50~51년쯤에 쓴 것으로 추정합니다. 서간에는 자신이 직접 세웠지만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박해를 피해 떠나야 했던 테살로니카 교회 신자들에 대한 바오로의 염려와 애정, 신자로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한 권고와 당부 등이 생생히 담겨 있습니다.

티모테오가 마케도니아에서 코린토로 내려온 이후 바오로는 더욱 복음 선포 활동에 매진합니다. 바오로는 1년 6개월 동안 코린토에서 지내면서 교회를 세운 후에 코린토를 떠나 아시아의 주도(州都) 에페소로 갑니다. 그러나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코린토를 함께 떠난 프리스킬라와 아퀼라 부부를 에페소에 남겨 둔 채 바오로는 카이사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에 올라가 그곳 교회에 인사한 후 안티오키아로 내려옵니다.(18,5-22) 이로써 바오로는 2차 선교 여행을 마칩니다.



분열하는 코린토 교회에 당부

안티오키아에서 얼마를 지낸 바오로는 다시 길을 떠납니다. 세 차례의 선교 여행 중 가장 긴 3차 선교 여행을 시작한 것입니다. 바오로의 3차 선교 여행은 53~58년 사이에 이루어집니다. 바오로는 내륙을 거쳐 북쪽으로 올라가 소아시아의 갈라티아와 프리기아를 차례로 거쳐 가면서 자신이 앞선 두 차례의 선교 여행 때에 세운 교회들을 찾아 신자들을 격려하고는 소아시아의 서쪽 끝에 있는 에페소에 도착해 그곳에서 27개월을 지내며 선교 활동을 펼칩니다.

바오로가 에페소에 있을 때 바다 건너 코린토에서 걱정스러운 소문이 들려옵니다. 코린토 교회 신자들이 ‘바오로 편’이니 ‘아폴로 편’이니 ‘케파 편’이니 심지어 ‘그리스도 편’이니 하면서 분열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불륜, 근친상간, 신자들 간의 법정 고발, 성찬례 모임에서의 불미스러운 일,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한 그릇된 이해 등 신자 생활과 교리에 관한 좋지 못한 이야기들도 함께 전해 듣습니다.

자신이 18개월이라는 꽤 오랜 기간을 보내며 힘들여 세운 코린토 교회의 이런 사정을 접한 바오로는 자신의 동료이자 협력자인 티모테오를 코린토로 파견하면서 그편에 코린토 상황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신자들에게 당부하는 내용의 편지를 써 보냅니다. 이것이 바오로 서간 중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입니다. 이 편지는 54년 봄쯤에 쓴 것으로 추정합니다. 바오로는 이 서간에 앞서 편지 한 통을 코린토 교회에 써 보냈는데, 안타깝게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코린토 교회의 사정이 심상치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장사하는”(2코린 2,17) 가짜 선교사들이 코린토에 와서 바오로의 사도직을 부정하며 신자들을 부추기고 있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바오로는 직접 코린토로 건너갑니다. 그의 두 번째 코린토 방문이었습니다.(2코린 13,2 참조) 하지만 바오로는 오히려 모욕만 당하고 에페소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는 “괴롭고 답답한 마음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며”(2코린 2,4) 코린토 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이 편지가 ‘코린토 교회에 보낸 세 번째 편지’입니다. ‘눈물 편지’라고도 하는 이 세 번째 편지는 바오로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10─13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alfonso84@hanmail.net